한국축구 유럽진출의 경제학

2003-09-03 10:46:07, Hit : 2209, IP : 219.251.163.***

작성자 : 서형욱 칼럼
아시아 국가에서 유럽 톱리그 선수를 한명 배출하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일본의 경우, 90년대 중반의 미우라(이탈리아 제노아)를 필두로 나카타, 나나미(이상 이탈리아 세리에A), 조 쇼지(스페인 프리메라라 리가) 등을 유럽 무대에 들여놓기 위해 각각 수백만 달러 이상의 스폰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여기에 일본 방송국에서 해당 리그 중계권 구입을 위해 지급한 금액까지 더하면 그 액수는 훨씬 높아진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 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잉글랜드 프레미어리그/디비전1에 대표선수들을 내보냈지만 그들 역시 대부분의 중화 상권과 추가 스폰서에 의존하는 방식을 이용해야 했다. 즉, 단기간의 이득 보다는 자국 축구계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얼마간의 손해를 무릅쓴 각계의 지원이 있었다는 얘기다.

많은 돈을 들이기는 했지만 이들의 성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스폰서를 등에 업고 유럽 무대를 밟은 나카타(이탈리아 파르마) 경우 이미 월드클라스 미드필더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고 중국의 리 티에(잉글랜드 에버턴)역시 스폰서의 도움 덕에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면서 프리미어리거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2년전 안정환의 세리에A 진출은 대우 자동차의 후원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박지성-이영표 역시 방송권 및 친선경기 유치 등으로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해준 중간상인의 역할에 일정부분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재 아시아 선수들에게는 이른바 '정착 비용'이 필요하다. 그들의 기량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득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저히 다른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것이라는 확신, 역대 아시아 선수들의 성공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 등이 각 유럽 구단들로 하여금 일정 수준의 '보증금'을 요구하게 만든 탓이다. 물론, 이같은 풍토가 널리 퍼지면서 아시아 선수 영입으로 한몫 잡아보자는 구단들(이를테면 안정환 영입 추진시 드러내놓고 거액의 스폰서를 요구한 스페인의 바야모모모 구단의 경우)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직 많은 유럽 구단들은 아시아 선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어 많은 경우, 적잖은 '정착 비용'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고비용 구조를 타개할 수 있는 길은 열려있다. 바로 어린 선수들이 해외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다. 즉, 유럽 구단의 유소년 팀에서 출발할 경우 여러모로 유리한 상황을 만날 수 있다. 올 봄, 축구협회의 지원으로 유럽 구단 유소년팀에서 1년여 연수과정을 밟은 양동현 등이 유럽 클럽의 유소년팀과 정식 계약을 맺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록 협회 차원에서 엄청난 액수의 지원금을 제공해준 결과이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같은 사례가 일반화된다면 기존 프로선수들의 유럽행을 목놓아 기다리는 축구팬들에게 보다 자주 희망적인 뉴스가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쉬운 것은, 협회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외 축구를 익히고 있는 유망주들에 대한 관리다. 협회의 꾸준한 관리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현 실력이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잉글랜드 웨스트햄 유소년팀에서 활약중인 이산의 경우를 보자. 현재 영국 나이로 18세인 이산은 앞으로 1년 안에 성인팀 정식 계약 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그러나 상황은 밝지 않다. 오랜 부상 끝에 최근 다시 주전으로 도약한데다 성인팀 주전들이 대거 다른 팀으로 팔려나가면서 출전 기회를 잡을 가능성도 늘긴 했지만 이같은 상황과 정식 계약은 별개의 문제인 탓이다.

유럽 클럽들은 유소년팀을 육성할때 실력과 함께 '상품성'을 본다. 특히 외국인 유망주의 경우 '상품가치'를 중시한다. 즉, 같은 실력이라면 '대표경력'을 가진 선수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는 얘기다. 실례로, 웨스트햄의 경우 현재 19세팀 선수 가운데 살아남은 5명 전원은 아일랜드, 잉글랜드 등의 현역 청소년 대표. 이것이 이산의 고민을 늘어나게 하는 이유다. 이산의 경우, 영국 축구를 온몸으로 익히며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그의 기량이나 성장 정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대표팀이 독일 원정에 나섰을때 1주일 가량 합숙한 것이 전부다. 이후에는 단 한번의 소집 요청도, 몸상태를 묻는 연락도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비단 한 선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회가 될때 외국에 나가 있는 어린 선수를 소집하거나 비디오 테입 등을 통해 상황을 체크할 수 있다면 청소년대표팀의 가용 선수자원을 늘릴 수 있을뿐 아니라 해당 선수가 성인팀 계약을 맺어 한단계 높은 리그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어 한국 축구로서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더군다나 각 개인의 자금과 노력으로 시도한 결과이므로 성인 선수들이 해외 리그에 진출할 때에 비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다. 톱리그 문턱에 다다른 선수들에게 대표팀 소집 등으로 힘을 실어주는 센스도 필요하지 않을런지.

아직 한국은 스포츠마케팅, 특히 선수 이적 분야에 있어 노하우가 부족하다. 현재 일본 리그쪽과는 활발한 교류를 통해 여러가지 경로가 설정되어 있어 비교적 쉽게 선수 이적이 가능하지만 유럽쪽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따라서 기존 선수들의 경우 유럽 진출을 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 (임유환, 김동현 등이 줄줄이 일본으로 가는 것 역시 이와 연관된 문제다.) 그렇기에 이런 어린 선수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호응을 해줄 필요가 있다. '내 새끼' 아니라고 방치해둔다면 서로에게 득이 될 일 없다. 속된 말로 '밑져야 본전'인 장사이니만큼 좀 더 적극성을 가져볼 수는 없을까.

출처(스포츠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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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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