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예찬

2005-01-07 23:23:06, Hit : 3787, IP : 61.77.11.***

작성자 : 석이
최근 축구협회 회장 선거로 인해서 야인으로 불리우는 김호 전 수원 블루윙즈 감독님이 괜히 축구팬들에게 오해를 받는거 같아서 안타깝네요. 축구에 대해서 많은것을 안다고 하는 축구팬들이 이분의 뜻을 몰라주는것 같아 씁쓸하네요. 아래글은 후추게시판에서 퍼온글인데 좋은 내용인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제목 : 김 호 예 찬

글쓴이 양경모(sasano8)  조회수 1460   작성일 2003-11-12 추천 73  

출처 : [후추 독분비관]
http://www.hoochoo.com/2002_board/board_r.asp?b_idx=58467&page=4&search=writer&keyword=양경모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예선, 대한민국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도하의 기적', 바로 북한과의 최종전이 벌어지던 날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조용히 걸어 나오던 선수들, 안타까운 마음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를 위로하던 축구팬들... 순간 갑자기 어린 아이처럼 뛰어가던 고정운 선수와 TV에 커다랗게 떴던 '한국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자막, 선수들의 질주, 아나운서의 격앙된 '일본 탈락~'이라는 외침까지... 어느 하나 분명하게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 없고, 흥분되던 그 때 선수들과 함께 눈물을 머금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때가 내 기억의 끝자락이 그 사람을 잡고 있는 가장 먼 곳인 듯 싶습니다.

94년 미국 월드컵, 우리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예선전에서의 졸 전을 뒤로한 채 본선에서 보여준 엄청난 경기력과 극적인 승부들... 비록 16강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수준의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을 뛰어가던 그 때를 생각합니다. '축구!' 라는 외침으로 한 시간 이상 수업이 중단되었던 때도 떠오릅니다. 교실 앞뒤로 칠판이 부서지고 바닥에는 워크맨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포옹하던 선생님의 모습도 기억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기억 속에 그 사람의 모습만은 좋지 못합니다.

'멍청한 감독', '머리를 쓸 줄 모르는 놈'...

어느 어른들의 술자리에서 그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자식 머리가 나쁘다며?"

"작전은 다 허정무 생각이래..."

"홍명보 위쪽으로 올리고, 서정원이 넣고 하는 거 다 허정무 머리에서 나온 거라며?"

"그래... 그래도 허정무는 명문대 물먹은 놈 아니냐... 그 놈은 대학도 안 나왔는데, 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냥 그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대학도 안 나온 놈'이 감독하느라 애는 먹는데, 참모 하나 옆에 잘 둬서 대표팀이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줄 알았습니다. 생전 몇 번 읽어보지도 않던 신문을 펴보니 어른들이 하신 말씀과 비슷한 얘기들이 써 있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야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살아가던 그 시절, 대학도 안 나온 놈 머리도 못 쓴다는 말이 정말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그냥 그 사람들의 생각은 조용히 제 가슴속에 저의 생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무식한 감독'

그렇게 별 관심 없이 그 사람을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한 신생 프로 축구팀의 감독으로 임명된 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무식하고 멍청한 감독은 그렇게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빨간 잠바에 무표정한 얼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라운드에서 직접 그를 보았습니다.

아마도 바로 그 순간부터 예전의 '멍청한 감독'의 이미지는 제 머리 속에서 조금씩 사라져 갔던 것 같습니다. 서서히 스며드는 화선지의 먹물처럼 그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이 머리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축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94년 월드컵 때 저는 '월드컵'을 보았지만 '축구'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축구가 가져다 주는 '승리'를 원했지만 그것이 전해줄 수 있는 '아름다움'까지 알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축구로 인해 흥분했지만 축구를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어린 마음에 어른들의 생각에 함께 몸을 실은 채로 그 곳까지 떠내려갔습니다. 그러다가 그 곳에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축구팬'으로 만들었습니다.


1996년 후기리그 우승.

1998년 K리그 우승.

1999년 슈퍼컵, 대한화재컵, 아디다스컵, K리그 우승.

2000년 슈퍼컵, 아디다스컵 우승

2001년 아디다스컵 우승, 아시안 클럽 챔피언쉽 우승, 아시안 슈퍼컵 우승

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쉽 우승, 아시안 슈퍼컵 우승으로 아시아 2연패 달성, FA컵 우승으로 아시아권에서 가져올 수 있는 모든 트로피 석권.





이것이 8년 간 그가 남긴 업적입니다. 기술 축구, 세련된 축구, 팬을 위한 축구, 자라나는 선수들을 좋은 선수로 만들어 내는 축구... 앞으로도 항상 멋진 모습으로 기억될 수원의 지난 8년입니다.


데니스와 고종수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패싱 게임과 서정원의 돌파, 바데아, 김진우의 훌륭한 미드필더 플레이와 신홍기, 박충균, 이기형, 이병근의 질풍같은 오버레핑, 이운재, 신범철이 지키는 골문과 김영선, 졸리, 조성환, 조병국까지 이어져 온 수원의 수비라인, 박건하에서 시작되어 샤샤와 산드로, 지금의 나드손까지 이어진 멋진 포워드들의 모습들, 그리고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16-17세의 어린 프로 선수들의 자라나는 모습들까지...

그 사람의 작품을 되돌아보니 참 훌륭한 그림 한 편을 그려 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인가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 선수들을 보기 위해 경기장 밖에서 팬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고 환호하고... 그러던 중 감독님이 나왔습니다. 저는 소리를 질렀죠. 목청이 터져라 감독님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버스에 오르시려 하시던 그 분이 제 쪽을 보고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직 20살 밖에 되지 않은 선수들이 거만한 모습에 한 손을 들어주며 멋쩍은 표정으로 본 척 만 척 버스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흰머리가 검은머리보다 더 많아 보이는 그 분이 팬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아직까지 제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그 분의 팬을 향한 겸손한 모습은 저에게 '축구'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축구인의 가장 기본인 팬들에 대한 예의를 갖춘 당신의 모습이 저에게 '좋은' 축구를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라디오 축구 중계를 듣다가 축구 선수가 되었다는 조그만 꼬마 아이. 연, 고대 나오지 않으면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하던 시절 고졸 실업 선수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경상도 청년. 축구에 대한 열정 외에 그 어떤 배경도 없었기에 처음 지도자를 시작했을 때 기자들과 축구 팬들에게 그만큼 욕먹었던 사람.

하지만 그 감독이 바로 성적이 좋지 않던 때 버스를 가로막는 써포터들의 격앙된 모습에 버스에서 직접 내리시고 대화의 자리를 만들자 말씀하시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팬들과 함께 응원하고 싶다고, 그 곳에 항상 있어달라고 당부하시는 축구인이 되었습니다. 담을 쌓고 거리를 두기 보다 조금 더 다가오시고, 조금 더 가르쳐 주시려는 좋은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만을 위하지 않았고, 한국 축구 전체를 생각했으며 남들이 높은 사람들 앞에서 내뱉기 싫어하는 쓴 소리를 거리낌 없이 얘기했습니다. K리그에 기술 축구와 그에 대한 투자라는 혁신적인 리그 발전을 도모했으며, 아시아 최강의 클럽 팀도 만들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앞날을 내다볼 줄 알았으며, 지금의 승리만큼이나 미래의 선수 발전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가득 차 있는 축구의 향기는 후배 지도자들과 선수들, 축구팬들에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축구인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새록새록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수원 전성기 시절... 고데로 트리오 "고종수, 데니스, 산드로"


내가 8-9년 간 그린 그림을 이어갈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감독 인선을 하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깝다. 아마 이런 축구 그림을 그리려면 다시 또 8-9년이 걸릴텐데...

팬들의 눈이 높아지는 데 투자를 하지 않으면 우리 축구가 따라갈 수가 없다. 기술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야한다. 인프라도 늘려야 하고... 국가 대표만 잘된다고 한국 축구가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바탕은 프로 축구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축구 전체가 잘 되는 일이다.

나는 축구로 시작해서 축구로 끝나는 사람이다. 항상 축구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후배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지... 사실 축구가 아니면 할 것도 없다. 일생동안 본 게 그 것 뿐이고, 할 줄 아는 것도 그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어나도 축구를 할 것이다.

지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간다. 꿈을 안고 시작했던 그 때부터 좋은 성적을 내던 때까지... 사실 조금 허탈하고 아쉬운 마음도 크다. 물론 차기 감독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그 분의 생각을 모르지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가 어린 후배들에게 좋은 축구를 가르치고 이끌며, 함께 하길 바란다는 점이다.

늘 응원해준 팬들, 특히 써포터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더 좋은 축구를 보여주지 못해서 죄송하다. 항상 열심히 해서 한국 축구를 위해 좋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하지만 지금은 좀 쉬고 싶다."

수원 블루윙스의 지난 8년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훌륭한 선수들과 구단의 좋은 투자, 팬들의 열정적인 성원까지... 하지만 저는 얘기합니다. 그 튼튼한 육체를 뛰게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바로 수원의 '심장' 김호 감독이었다고 말입니다.

이번 주 일요일 저는 빅버드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웅장한 북소리와 써포터의 함성에 젖어 목청껏 응원하고 수원의 승리를 부르짖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수원의 팬이 되던 그 때처럼 말입니다.


김호 감독님.


이제 저는 저를 '축구팬'으로 만들어준 당신을 뜨거운 눈물로 배웅하려고 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축구를 하겠다는 당신의 말... 아마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이 바로 수원 블루윙스, K리그, 그리고 한국 축구의 '아버지'입니다.




제목 : 참 오래 기다렸던 표현입니다.

글쓴이 서호정(t2o2ro)  작성일 2003-11-12

http://www.hoochoo.com/2002_board/board_r.asp?b_idx=58472&page=4&search=writer&keyword=양경모

한국 축구의 '아버지'.

언젠가 이 얘기로 제가 존경하는 후추인 한분과 메일로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김용식 선생님과 함흥철 선생님께서 작고하신 다음에 한국축구는 거대한 기둥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고인들께서 맡아오셨던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축이 사라진 후 한국축구계는 이합집산과 반목이 반복되었고, 현재도 보이지 않는 아귀싸움은 여전합니다. 흔들리는 한국축구를 보면서 위기의 상황이면 나타나 그 혼란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다른 축구선진국들의 '아버지'들이 부러웠습니다

김호 감독님.

최근 인터뷰에서 수원의 지도자로서 올해가 가장 힘든 한해였다고 말씀하신 걸 봤습니다. 올시즌 초 수원의 성적이 부진했을때 서포터들이 '감독퇴진운동'도 서슴치 않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을때는 참으로 착잡하고 답답했습니다.

그렇게 일신을 보하기도 힘든 상황에서도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한 의견을 내는데 두려움 없이 당당하셨고, 그런 의견이 한낱 말로만 그치지 않게 맨 앞에 앞장서 행동으로 실천해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여전히 야인입니다.

그분의 업적과 공로가 위대하기에 그것을 한국축구 역사의 위대한 한 페이지로 님겨야 함은 당연하지만 현재 그분의 위치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제 그분을 진정한 '한국 축구의 아버지'로 존경하고 예우해야 하는 것은 우리 축구팬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휴식이 길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그라운드에서 뵈어야 가장 멋진 분 아니겠습니까?









품안에..
221.221.35.***
예전 어릴때 축구경기를 보며 이분을 참 바보같은 감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며 되려 제가 참 멍청하고 바보이며 귀가 앏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김호감독님 정말 죄송합니다. 어린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가 철없는 마음을 품었던것이 참으로 죄송할 뿐입니다. 석이님 다시 읽는 글이지만 여러 생각이 나게합니다. 어릴적 아무것도 모르는( 뭐지금도 아는것 없는 철부지지만..)바보스런 이기는 축구만을 좋아하는 승패에 연연해하던 어리석은 축구팬이던 저의 모습을 말입니다...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2006-07-21
04:49:16

수정 삭제
석이
220.94.20.***
월드컵에서 축구계의 원로로서 몇마디 기사 나오면 지금도 하이에나 처럼 리플다는 사람들 보면 철이없는건지 생각이 없는건지 할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이런분들에게 좀더 따스한 눈길도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수원에서 마지막 경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대구전이었는데 그날 후반전에 별다른 시간 지연이 없었는데 꽤나 시간을 길게 주더군요, 그리고 경기 끝나기 직전에 얻은 프리킥을 골을 넣고 모든 선수들이 김호 감독님에게 달려가던 모습도요....ㅜ.ㅜ 2006-07-25
21:38:52

수정 삭제
석이
220.94.20.***
수원의 초대감독으로 재미난 축구와 엄청난 성적 그리고 젊은 유망주 발굴은 높이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지금도 그랑에서 많이 그리워하는것을 보면 참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2002년 부터 리빌딩을 해서 2003년 말쯤에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 갔는데 1년 정도만 더 기회를 주는게 어땠을까 하기도 하고요. 뒤 늦은 후회지만요. 2006-07-25
21: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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