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펌]시오노 나나미의 축구 이야기

2003-04-18 00:24:15, Hit : 3758, IP : 211.187.21.***

작성자 : 中原
글쓴이 송경호(phalanxs)  작성일 2003-04-11

저도 참 인상깊게 보고 누드에 퍼다 둔적이 있었던 글이라서 복사해 올려드립니다...
날짜를 보니 벌써 2년이나 지났군요.... 시간 참 으....



승리하는데는 공격 밖에 없어요.




"싸움터의 주도권을 쥔 쪽에 승리의 여신이 편을 드는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카이사르의 예를 들 것도 없이 전투의 기본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말하는 축구의 전략.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실로 대단한 축구통이다.
"이탈리아에 오래 살고 있으면 다소 아는 것은 당연하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고대 로마인의
생활상을 읽고 푸는그 날카로운 눈이 결전장에서 펼쳐지는 전투의 본질을, '전사'로서의
선수들의 자질을 간과할 턱이 없다. 왜 이탈리아인은 수비에 집착하는가?
프랑스가 강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인으로서는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유럽인들과 축구의
이상한 관계에 대하여 종횡으로 그 해설을 듣는다.
이 글은 일본의 유명한 스포츠잡지 <넘버 플러스>(Number plus) 2000년 9월호에
'전투의 지혜'(Wisdom of Battle)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이다.



Football, the way of life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나에게 했다.
"시오노 선생은 어찌 그렇게 축구에 밝으십니까?"


르네상스라든가 고대 로마사의 작가인 나와 축구가 쉬이 결부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 30년 넘게 살면서 축구를 모를 수는 없지요."


사실, 축구를 알면 이점이 적지 않다. 젊었을 때 나는 기차를 타고 온 이탈리아를 돌아다녔는데,
이탈리아 사나이들은 여자에게 구애를 하지 않는 것을 실례라고 믿는 인종이기도 하다.
그것을 교묘히 피하기 위해서는 화제를 축구로 몰고 가는 것이 대단히 유효했다.
공을 차는 이야기만 나오면 그들은 금방 넋을 잃고는 구애하고 있었던 것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 얘기에 열중해주기 때문에, 나의 여행은 그것만으로도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탈리아 사나이들에 한하지는 않는다.
근엄한 것으로 되어 있는 영국 신사를 상대할 때도 효과를 발휘한다.
역사학자가 상대라 화제는 고대 로마에 관한 것이었는데, 차 마시는 시간에 내가 말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대의 캉토나는 당당하면서도 뻔뻔스럽고, 그러면서도 멋있었어요."
근엄한 영국 신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한다.


"캉토나는, 영국인이 사랑하는 유일한 프랑스인이었습니다."


유럽의 역사는 영국과 프랑스의 대항의식으로 성립되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영국인의 사랑을 받은 일이라면, 나폴레옹도 드골도, 하물며 작금의 시라크나 조스팽
같은 이는 이 캉토나에 멀리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축구와는 인연이 없지도 않은 나지만, 스포츠로서의 축구를 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의 말이라 생각하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다만, 질문은 <넘버>지의 편집장이 하는 것이니 프로의 생각인 것은 틀림이 없다.


'수비 굳히기'를 잘하느니 어쩌니 하며 좋아하고 있다가는, 이탈리아는 언제까지 가도 이기지는 못해요.




[질문1]유럽 선수권에 관한 것부터 질문하고 싶습니다. 네덜란드가 세계 최강이라는말을 듣고 있었고,
준준결승에서 유고를 6-1의 큰 차이로 분쇄하여 실력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준결승의 대 이탈리아 전에서도 네덜란드가 경기를 지배하여, 유리하게 싸움을 진행시켜 나갔습니다.
그런데 경기 중에 두 개나 페널티 킥을 놓친데다가, 연장전 끝의 PK전에서도 계속 실축하여 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패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네덜란드 축구는 요한 크루이프 이래, 전술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진화한 이상주의적 축구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번처럼 마지막 일보로 1위 자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국민성과 역사에 비추어 어떤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번 유럽선수권에서는, 내 개인 생각을 말한다면, 네덜란드가 이겨줬으면 싶었어요.
네덜란드라기 보다는, 네덜란드의 백넘버 10번 베르캄프가 이겨줬으면 싶었지요.
왜냐구요? 침통한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북방의 위장부로 하여금 한 번쯤은 파안대소시키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네덜란드 팀은 우수한 베테랑을 망라하고 있었으니까, 승리하겠다는 의지만 강했더라면
PK전으로 넘어가기 전에 벌써 이겼을 거예요.

그런데 졌던 말씀이에요. 패인은 국민성이나 역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베르캄프가 자기 의무를 완벽하게 다하지 않아서 진 거예요. 왜 다하지 못했는가?
그 북방의 위장부는, 육체적으로는 무엇 하나 나무랄 데가 없어도 정신적으로 약한 것이 아닌지 몰라요.
그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과감하게 돌파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스날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무찌르지 못하는 것도 그런 데에 이유의 하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다하게 돼요."




[질문2] 거꾸로 이탈리아는 경이적이리만큼 철저히 수비를 고수하여 네덜란드의 공격에 끝내 견디어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은 수비를 그렇게도 잘 할까요? 또 어째서 그들은 철저하게 수비에만 집착하는 것일까요?


"이탈리아 팀의 수비 말인데요, 그건 과거의 성공 체험에 매달려 있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고,
수비 굳히기를 잘하느니 어쩌니 하며 좋아하고 있다가는, 이탈리아는 언제까지 가도 이기지 못해요.
내가 이겨줬으면 하는 첫째는 역시 이탈리아니까, 이탈리아 축구의 방향 전환을 위해서는 이번에는
예선에서 차라리 패퇴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랍니다. 승리하는 데는 공격밖에 없어요.
싸움터의 주도권을 쥔 쪽에 승리의 여신이 편을 드는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카이사르의
예를 들 것도 없이 전투의 기본입니다."




[질문3] 이탈리아는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99퍼센트 승리를 손안에 쥐어놓고도 로스타임에서
동점에 몰려 연장전에서 역전패하고 말았습니다. 현실주의자가 왜 마지막 마무리를 못했는지 이상합니다.
이것은 이탈리아인의 국민성에 비추어서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결승에서 이탈리아가 패한 원인은 이탈리아인의 국민성 때문이 아니라, 단지 이탈리아 팀이
어린애들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99퍼센트 승리를 수중에 넣었을 때 그것을 확실하게 만드는 것은
배짱이 두둑한 베테랑만이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지난 몇 해 동안, 이탈리아는 큰 무대에서의 베테랑 효용에 대해서 무지했어요. 그래서 언제나 캡틴 부재였지요.
말디니는 끝내 팀의 기둥이 되지 못했어요. 적은 물론이고 자기 편 조차 예측 불가능한 기술로
마구 치고 나가는 것이 베테랑의 베테랑다운 까닭인데, 준마나 다름없는 베테랑을 충분히
부려먹을 자신이 없는 사람들만 국가대표 팀의 감독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이탈리아의 비극입니다."




[질문4] 경기에 진 뒤 흔히 유럽선수들은, "우리들에게는 운이 없었을 뿐이다"라든가, "심판 탓이야"와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델 피에로가 경기가 끝난 뒤에
"진 것은 내 탓이다. 내가 득점을 해서 경기를 결정지었어야 하는 건데"하고 언급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적인 감각으로 말하면 '떳떳하고' 훌륭한 발언인데,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델 피에로는 떳떳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에요. 솔직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가는 죽기 때문이지요.
죽는다는 것은 좀 과장된 말이지만,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말이라도 했다면 귀국 후에 매스미디어와
팬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어요.
그런데 솔직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정도로는 이탈리아인은 용서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모국어인 이탈리아어조차 잘하지 못해 두뇌의 됨됨이를 의심받아도 할 수 없는 그 어린애는,
지난번 유럽 선수권에서도 설사를 일으켜 아무 소용이 없었거든요. 10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사람
과연 알고나 있는지 몰라. 자기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사나이가 국가대표팀의 지주가 될 수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국어조차 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토티도 동류예요. 유럽 선수권에서 한 골 넣은 것을
가지고 떠오르고 있으니, 이래서는 로마에 돌아와서 바티스투타와의 앞으로의 관계가 불안해요.


반면에 외국어인 이탈리아어로 충분히 의사 소통을 하고 있는 사람은 지단, 데시앙, 바티스투타, 비어호프,
보반, 미하일로비치 등 수가 많아요. 셰프첸코 같은 사람은 아직 2년 밖에 안 되는데 정확히 말합니다.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를 소통시키는 능력은 두뇌의 됨됨이와 비례 관계에 있어요.
축구에서도 머리가 좋은 편이 유리하니까요.

그러기는 하나 감독, 캡틴, 10번 등 모두가 부재인데도 결승까지 진출하고 있으니, 이탈리아는
'썩어도 준치'이기는 합니다."

자기들이 '싸움터'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전투에서는 언제나 승자가 되는 것입니다.




[질문5] 한편, 프랑스는 몇 번이나 대접전에 이겨 우승했습니다. 어째서 그들은 마지막까지 단념하지 않았을까요?
역사상의 승자에 공통하는 조건에 비추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들려주십시오.


"대접전을 벌이고 결국 프랑스가 승리하고 만 원인의 하나는, 내 생각으로는 확실히 베테랑의
활용에 있었던 것 같아요. 데시앙, 지단, 그리고 검은 귀공자 데자시 등. 그들은 경기장을,
그곳이 어디거나 자기 홈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자기들이 '싸움터'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전투에서는 언제나 승자가 되는 겁니다."




[질문6] 프랑스와 다른 강호국과의 큰 차이로서, 지단이라는 리더의 존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시오노 선생은 "한 사람의 영웅이 역사를 바꾸는 수가 있다"고 쓰고 계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프랑스의 10번이 델 피에로였다면, 프랑스는 이기지 못했어요. 한편, 이탈리아의 10번이 지단이었다면,
이탈리아는 챔피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대답이 되지 않나요?


지단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이런 남자와 결혼하면 여자는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다하게 돼요.
부드러운 유머, 축구를 직업으로 삼는 데 대한 마음가짐의 확실함, 무대가 크면 클수록 더욱 발휘되는
승부 배짱. 미남이 아니건 머리가 벗어졌건 알 바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거든요.


고대 로마의 장군이라면, 서슴없이 그를 백인대장에 임명했을 겁니다. 그것도 제1대대의 제1백인대의 대장으로 말예요. 말하자면, 싸움터에서는 선두에서 돌격해 나가는 중대의 지휘관이지요. 그러기에 백인대장은 로마 군단의 등뼈라는 말을 들었지요.


유럽선수권의 예상 승자는, 프랑스가 아니면 네덜란드라는 말이 있었지요. 하지만, 지단과 베르캄프를 비교해보세요.
지단은 이미 영광에 빛나고 있었으니 이번에는 베르캄프가 이겼으면 하고 바란 나였지만, 저 지단에게서
모자를 벗을 수 밖에 없었지요. 잊지 마세요. 계속 승자로 남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요."




[질문7] 현재의 유럽 각국 대표팀의 인종 구성을 보면, 순혈팀인 이탈리아나 독일에 대해서, 프랑스,
네덜란드, 잉글랜드는 이민이나 구 식민지 출신자들을 기용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아 후자가 유리한 것 같지만,
이틀테면 과거에 네덜란드처럼 팀 내에 인종 차별과 대립이 일어나서 자기 붕괴한 적도 있습니다.
시오노 선생은, 로마가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대했던 이유로서, 영내 이민족을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인
유일한 보편 제국이었던 점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런 관점에서 유럽 각국의 대표 팀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을 하시게 됩니까?


"이탈리아가 순혈 팀인 것은, 순혈을 고집해서가 아니라 다만 식민지를 가진 역사가 얕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는 독일도 일본도 마찬가지지요. 식민지에서는 종주국의 언어가 사용되었으니까, 구 식민지
출신자는 구 종주국에서 생활하는데 불편을 느끼는 정도가 적지요.


혼혈 팀이 되는 데는 조건이 하나 더 있어요. 이주하는 곳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앞서 있다고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장래에 대한 가능성이 더 크다고 여기게 하는 경우지요.
이 점에서는 일본이나 이탈리아보다는 독일이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검은 사자들의 활약은
먼저 독일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강자가 유리한 조건을 향유하는 것은 유럽의 '상식'
그러기에 누구나 다 강자가 되려고 애를 쓴다




[질문8] 이번에는 포르투갈의 선전도 큰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들은 준결승의 대 프랑스전에서
연장전까지 끌고 들어가, 미묘한 판정으로 핸들링에 의한 페널티 킥을 빼앗겨 석패했습니다.
이에 대해 포르투갈 선수들은 "이제 축구에는 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유럽축구연맹(UEFA)은
장사를 위해 대국끼리의 결승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포르투갈 같은 작은 나라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거야"하고
이구동성으로 정치적 불공정을 강력히 호소했습니다.
이와 같이 스포츠와 정치를 결부시키는 발언을 유럽에서는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억지가 아니라 유럽의 '상식'일까요?


"포르투갈 팀의 약진상은 나를 매우 행복하게 만들었어요. 첫째, 피오렌티나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루이 코스타의 차분한 멋이 못 견디게 좋아요. 게다가 피구 선수는 그 생김새부터가 '사나이'거든요.
그래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 페널티 킥은 역시 페널티 킥이에요.
그들이 억울해하는 것은 알만 하지만. 하기야 심판의 판정이 대국이나 유명 클럽 팀에 유리하게 기우는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 이것을 유럽의 '상식'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강자가 유리한 조건을 향유하는 것은
유럽의 '상식'이지요. 리그 전초일을 보면 최강자아 최약자가 붙도록 짜여져 있어요.
그러기에 강자가 되려고 누구나 애를 쓰는 거예요. 포르투갈도 나라는 작지만, 축구에서는
대국이 되는 수 밖에 없어요."




[질문9] 독일은 요즈음 축 처져 있습니다. 그들의 축구는 교과서 그대로라 군더더기가 없어 강하지만,
시시하다는 말을 흔히 들어왔습니다. 대표 주장 마테우스의 코멘트에는 '규율' '사명' '책임'과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해서 어딘지 군대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런 독일의 특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독일 축구는 교과서 그대로라 재미가 없다는 말을 들은 것은 베켄바워 등장 이전의 얘기가 아닌지 몰라요.
적어도 지난 십수년 동안의 독일은, 재미는 부족하더라도 강하기는 했거든요. 이번에는 신구 세대의 교체를
잘못한 데서 온 패배에 지나지 않고, 독일은 반드시 재기해옵니다. 왜냐하면, 적이 예측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는 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자기들에게 없는 것을 이탈리아에서 배우려고 한 거예요. 선수들 개개인이 세리에A에서
플레이함으로써 말이지요. 이것을 베켄바워가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일찍이 자기 소유의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세리에A의 유력한 팀의 감독을 역임하여 독일 국가 팀의 절반을 육성했다는
평을 들은 트라파트니를 초빙한 것으로도 알 수 있어요.
이탈리아 축구의 진수라는 '판타지아'를 독일인으로 하여금 터득시키려 한 모양이지요.
규율, 사명감, 책임감에 판타지아(상상력)를 가미한다면 철벽이 될 수밖에. 이것을 다시 전성기인
마테우스 같은 이상적인 '백인대장'이 이끌게 된다면 독일의 챔피언 복귀도 꿈만으로 그치지 않게 됩니다."




[질문10] 영국 축구는 롱슛을 날려 헤딩을 다투는, 격력한 몸싸움이 특징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국민성과의 어떤 연관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영국 축구는, 오웬은 아직도 귀여울 뿐이고, 베켐은 때때로 뛰어나 보이기는 하지만 지속성이 없고 해서
굉장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해요.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에는 숙달한 외국인 플레이어가 많아졌으니까
영국의 국민성에 맞는 플레이도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니, 반드시 변할 겁니다.
변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으니까. 순수배양은, 작금의 일본 정계나 관계를 볼 것도 없이 국제 경쟁력을
갖는데는 최대의 적인 것입니다."




[질문11] 다음으로 축구클럽에 대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축구에 오너들은
과도한 거액의 투자를 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돈을 쓸까요? 이것은 로마 시대의 위정자들이 한 것처럼,
민중에 대한 시혜나 공공투자에 대한 사재 제공의 관습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세계 선수권에서나 유럽 선수권에서나 출장 선수 거의가 낯이 익은 것은, 이탈리아의 세리에A에
우수한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축구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언어가 이탈리아어라는 것도 그 예증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것은 큰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실현되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런 게 좋잖아요? 큰돈을 지불해주기 때문이라는 이유 이외에, 세리에A에는 우수한 선수끼리
경기하는 기쁨도 있으니까. 일본J리그와의 차이는 역시 있어요. 축구건 무엇이건, 자기 생애를 바칠 결심을 한
사람에 대한 보수는 돈만이 아니지요. 그리고 관중은, 인생은 돈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나이들이 펼치는,
목숨을 건 승부를 즐기는 것입니다."




[질문12] 일본에서는 축구 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는 기업이나 학교가 중심입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어떻게 해서 클럽이라는 것이 발달했을까요? 도대체 클럽이란 무엇일까요?


"클럽 팀이 발달할 소지가 일본에는 처음부터 없어요. 클럽은 지방 사이의 경쟁심이 없는 곳에는 생기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국민체육대회라든가 고향의 운동회 같은 것이 성한데, 그 것으로는 '지방'의 응석을 조장시켜줄 뿐이고,
오히려 경쟁심의 건전한 발달을 막는데 도움이 될 뿐이지요.


우선 도쿄 출신자는 지방 출신자를 시골뜨기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지방 출신자끼리도, 도호쿠 사람은 흐리멍텅하다든가, 규슈 사람은 저돌적이라든가 하는 말은 해서도 안될뿐더러
생각을 해서도 안 되며, '모두 의좋은 사이'가 일본인의 생활방식인 거예요.
이러니 지방의 향토의식이 강해야 비로소 성립되는 클럽 팀 제도는 꿈 같은 얘기지요. 클럽 팀의 발전을 기대하려면,
국민체육대회를 폐지하고 고향 응석 조장주의를 없애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도요타는 피렌체 팀인 피오렌티나의 스폰서인데, 도요타의 사옥이 있는 로마에서는 클럽 팀을 위해
스폰서를 해주지 못하고 있어요. 로마에는 로마와 라치오 두팀이 있는데, 사원들은 이 두 팀 가운데 한쪽의 팬이니까
어느 한쪽의 스폰서가 되었다가는 이탈리아 도요타는 살아남지를 못해요.
그까짓 축구쯤으로 뭘, 이런 게 아닌 거예요."




[질문13] 유럽의축구 선수들은 어떤 지위를 누리고 있는지요? 유럽은 일본보다도 스포츠의
사회적 지위가 훨씬 높아 보이는데. 또 선수에 대해서 플레이 이외에 인격, 품격 같은 것도 요구합니까?


"자기 생애를 음미함이 없이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대부분 영웅이 되는 것이니까, 사회적 지위 향상까지
바란다면 벌을 받지요. 지위 따위는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의 기개가 없다면 영광을 차지할 수 없어요.
다만,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위에 그치고, 보통 사람들이 지키는 것은 영웅이라도 역시 지켜야지요.
영웅도 사람이니까."




[질문14] 유럽의 위정자들은 축구를 민중의 욕구 불만 해소를 위한 배출구로 삼고 있다는 말을 흔히 듣는데,
시오노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장 강하고 가장 부유한 나라이기도 한 미국에도 집 없는 사람은 있고 빈곤한 사람도 없어지지 않아요.
불만을 가진 민중이 있는 것은 국가나 공동체로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멸이 불가능한 불만 배출구의 하나가 축구라 하더라도, 그게 왜 나쁘지 나는 모르겠어요.
생활의 불만을 기쁨과 함께 토해낸다면 이 또한 인생의 쾌락이 아닐까요.
그것을 하게 해주니까 그들은 영웅인 거예요."




[질문15] 마지막으로, 시오노 선생이 좋아하시는 선수와 그 까닭을 들려주십시오.


"AC밀란의 보반. 플레이가 얼마나 고상한지 숨을 죽일 정도지요. 전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해버렸지만,
라치오의 9번이었던 만치니. 이유는 발군의 지력. 이번 시즌부터 로마에서 플레이하는 바티스투타.
이유는 섹시하다는 한 마디로 족하지요.


다도의 예법은 우아하지만, 합리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많을 겁니다.
궁극의 품위는 궁극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보반이 날리는 롱슈팅이나 코너킥의 정확성은, 우아와 표리일체이기에
성공률도 높은 거예요. AC밀란도 그가 등장만 하면 경기 분위기가 확 긴장되기 시작하니까,
10번 자격은 충분히 있는 사람이지요.


만치니는 머리만 좋을 뿐 아니라 배짱도 있어요. 첼시의 감독인 비알라와 손을 잡았던 시대의 그에게는
영광도 있었어요. 로베르토 바조와 함께 이탈리아 축구의 판타지아가 무엇인지를 이해시켜준 사람이었으니까요.


한번이라도 좋으니 카메라멘으로라도 분장해, 골 바로 뒤에서 바티스투타의 슈팅 모습을 보고 싶어요.
이 천성의 스트라이커의 발에서 튀어나가는 슈팅의 위력을, 골키퍼와 거의 같은 위치에서 맛보고 싶은 거예요.
막무가내로 강력히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 것이 틀림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 세사람에게는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어요. 이탈리아어에서 말하는 '카티베리아'(Cattiveria)라는 것인데,
일본어로는 '악의'로밖에 옮길 수 없는 말이지만, 단순한 악의가 아니에요.
바꾸어 말하면, 궁극의 자기 중심주의를 말하는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 플레이하고는 있지만 결과는
팀을 위한 것이 된다는 방식입니다. 팀의 이익이 되고 안되고는 관계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와는 전혀 다르지요.


이탈리아에서는 아쉽게 진 경기를 곧잘 '카치베리아'가 결핍되어 있었다고 평하지요.
이탈리아식으로 말한다면, 유럽 선수권의 결승에서는 이탈리아의 선수들이 '악의'가 없었기 때문에
로스타임에서 동점으로 추적당하고, 연장전에서 역전패했다, 이런 말이 되는 거예요.



언젠가 로마의 택시 기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나카타는 본 조카토레지만, 아직 포리클라세는 아니네요."


본 조카토레'(Buon Giocatore)는 '좋은 선수'라는 뜻이고, 포리클라세는 '초급'(급수를 뛰어넘는 정도)이라고나 할 뜻이니까 일본말로 옮기면 '일류'가 되겠지요.


'일류'는, 이건 무슨 일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악의'가 없으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번 시즌에 나카타 군은 가장 중요한 무대에 들어서게 된다고 생각되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좋은 선수'에서
'일류'로 탈피하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카티베리아'에 가득 찬
'포리클라세'의 본보기 같은 바티스투타와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까요.
나카타 군과 반년을 같이 지낸 현 페루지아의 감독 마초네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모든 것을 가진 나카타지만, 카티베리아만은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


적극적인 뜻의 '악의'가 인간을 신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유럽적인 유럽인은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추에서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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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n|03/04/13-11:38|NOMAIL|211.211.37.170
카티베리아. 일본식으로 '악의'라고 해석하는군요.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근성'이 아닐까 싶네요. 우아함,고상함,카리스마적인 리더십,집요한 승부근성 등을 최고로 치는 시오노 나나미의 취향으로는, 2002월드컵의 한국 경기를 봤다면, 홍명보 선수에게 반했을것 같군요.

ㄴㄱ|03/04/13-14:48|NOMAIL|220.86.12.43
시오노의 관점에서라면 우리나라 선수들만한 선수들이 없을 것 같은데요. 월드컵 막바지에 갈수록 핼쓱해진 얼굴로 그러나 불꽃같은 투혼으로 뛰던 우리 선수들, 정말 멋졌지요. 그 투혼의 결정은 이탈리아전인데, 이탈리아의 팬인 시오노씨가 어떻게 봤을지는 미지수군요.(웃음)


gogo|03/04/15-16:15|NOMAIL|211.187.21.212
눌객님 의견에 동감. 그리고 카메라팀으로 분장해서 가까이에서 슛팅장면을 느껴보고 싶다는 건... 저도 늘 생각하고 있던 바입니다. ^^... 2003년 시오노 나나미씨가 한국축구를 어떻게 보고있는지 물어보고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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