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한겨레21-김남일, 날 것 그대로! 외

2003-04-26 12:15:31, Hit : 4169, IP : 211.185.54.***

작성자 : 멀리서~~
▶ 잡지 : 한겨레21 (2002년07월24일 제419호)
김남일, 날 것 그대로!(표지글) / '자존심회복'의 카타르시스 / 섬소년,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 '꽃미남’을 뛰어넘다




■ 김남일, 날 것 그대로! ■

김남일 신드롬의 키워드를 찾아서… 그의 전폭적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승리의 기쁨과 응원의 열기로 메워졌던 거리에는 분주한 일상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때의 흥분과 열기는 월드컵 4강진출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하나의 사회현상을 만들어냈다. 월드컵 대표팀 미드필더 김남일 신드롬이다.

이미 인터넷상에서 1천개를 돌파한 그의 팬 사이트는 지금도 하루 4,5개씩 꾸준히 추가되고 있고,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의 ‘베스트 MF 김남일’의 가입자 수는 47만명을 넘어섰다. 인터넷에는 김남일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좋아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팬들이 쓰는 소설)까지 등장해 날마다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지난 7월14일 안철수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스, 나모인터렉티브가 벤처업계 직원들을 상대로 올 여름 휴가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휴가를 함께 가고 싶은 유명인 1위에 김남일이 올랐다.  

안정적인 재활치료에 지장을 받을 만큼 언론사의 취재경쟁과 팬들의 추적이 심해지자 그는 지난 7월8일 합동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언론접촉을 거부하며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 구단 쪽은 7월 말이나 8월 초쯤 김남일이 경기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스포츠 신문은 연일 김남일 관련기사를 경쟁적으로 내보내고 있으며, 팬들은 김남일 없는 경기장으로 몰려와 그의 이름을 목청껏 외친다.  



[사진] 김남일과 팬들의 시선이 스파크를 일으킨 지점은
기존의 팬덤현상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스포츠투데이)


최근 일고 있는 김남일 신드롬은 또래집단에서 전염성이 매우 강한 팬덤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김남일과 팬들의 시선이 스파크를 일으킨 지점은 기존의 팬덤현상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최근 김남일을 둘러싸고 벌어진 에피소드를 통해 김남일 신드롬의 키워드를 찾아본다.
  
"남일아 부킹 들어왔다”
“남일아 불 꺼라”
“남일아 셋만 낳자”

  
K리그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응원방법은 혼자 들고 다니기 편할 만큼 작은 종이에 적은 소규모 피켓팅이다. 10대 소녀들이 경기장에서 ‘각자’ 펼치는 피켓에는 이처럼 노골적인 구호들이 적혀 있다. 방송국 객석에 자주 등장하는 “오빠, 사랑해요.” 정도의 ‘약한’구호는 명함을 내밀기 힘들 정도다.

섹스어필은 스타에 대한 열광에 녹아 있는 중요한 코드다. 조성모의 여성적인 섬세함을 좋아하고, 김재원의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남성성’은 오빠 부대를 모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 된다. 그러나 피켓에 적힌 구호에서 드러나듯 김남일을 향한 팬들의 환호에는 다른 스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달리 육체적 관능에 대한 노골적인 욕망이 담겨 있다. 이것은 물론 솔직하고 장난기 가득한 김남일 ‘따라하기’의 짓궂은 표현이기도 하다.  

김남일이 드러내는 육체성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터프가이’이미지를 가진 대다수 연예인들이 갖추지 못한 것이 있다. “김남일에게는 완성된 상품이 아니라 각본 없이 90분을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하는 운동선수이므로 원초적이고 순수한 육감적 매력이 있다”는 문화평론가 정윤수씨의 지적처럼 김남일은 조작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라운드를 누빌 때 드러나는 근육질의 몸이나 상대방과 몸싸움을 할 때의 거침없는 행동을 보며 팬들은 매니지먼트사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리되는 ‘터프가이’들과 달리 김남일의 ‘맨 얼굴’, ‘벗은 육체’를 보는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상대선수를 향해 내뱉는 쌍욕조차 친근함을 주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팬들의 반응 역시 직접적이고 대담해질 수 있는 것이다.  
  
선후배 간의 거리를 없애기 위해 존칭을 쓰지 말라는 히딩크 감독의 지시가 떨어지자 선수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때 김남일이 정적을 깼다. “명보, 밥 먹자.”

셔츠를 흠뻑 적시는 땀과 상대방을 제압하는 거침없는 몸놀림 등 꾸밈없는 육체적 매력은 김남일만의 것이 아니다. 실은 그라운드에서 뛴 모든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이다. 그러나 왜 김남일일까. 믿거나 말거나의 ‘카더라’ 통신이기는 하지만 김남일이라면 능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행동들은 오로지 김남일만의 것이다. 김남일은 1990년대 말부터 남성 아이돌 스타의 주된 흐름이 된 ‘바른생활 꽃미남 소년’ 계보와는 한참 떨어져 있다. god는 어린 아기를 키우며 팬들의 사랑을 쌓아갔고, 유승준은 담배 피우는 청소년을 선도하면서  ‘아름다운 청년’의 이미지를 구축해갔다. 월드컵 대표선수 가운데 대규모 여성팬 부대를 거느린 송종국 역시 고운 피부에 선량하고 겸손한 태도의 바른생활 소년과에 속한다.  

굳이 캐릭터로 범주화한다면 김남일은 마음도 순수한 꽃미남 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조역인 ‘불량소년’에 가깝다. 고등학교 시절, 선배들의 지나친 체벌에 축구부를 뛰쳐나가 가출까지 한 그의 전력이 말해주듯이 그는 착하고 말 잘 듣는 후배나 홍명보처럼 우직하고 듬직한 선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권위나 위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이는 그의 태도는 ‘반항한다’기보다는 ‘개긴다’는 속어가 어울린다. 결연히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남일은 ‘고독한 반항아’가 아니라 ‘쿨한 양아치’ 계보에 속한다.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10대들에게서 주로 드러나는 김남일의 “의리 있어 보이는 양아치” 이미지에 대한 열광이 하위문화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상냥한 스타는 좋아할 수는 있지만 좀처럼 동일시되지는 않는 데 비해 평소에 자신들이 금지당한 것을 툭툭 내뱉고 저지르는 김남일에게는 쉽게 동일시되는 즐거움을 느낀다”라는 것이다.  

프랑스와의 마지막 평가전 때 그가 마크한 지단이 부상으로 결장하자 기자들이 “지단 연봉이 얼만데” 하고 걱정스레 물었다. 김남일 왈 “아,제 연봉에서 까라고 하세요.”

“지단이나 핀투, 토티같이 쟁쟁한 선수들 앞에서 실력으로나 눈빛으로나 주눅들지 않는 모습이 좋았어요.” 직장인 김애경(24)씨가 김남일을 좋아하는 이유다. 축구를 좋아해서 예선전부터 김남일을 눈여겨본 그가 김씨를 뛰어난 축구선수에서 ‘오빠’로 모시게 된 데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미국전에서 한 선수와 시비가 붙자 몰려온 8명의 다른 선수들과 그 큰눈을 부라리며 ‘맞장뜬’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김씨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전 에피소드는 김남일이라는 존재가 일개 선수에서 ‘국가적 자존심’의 상징이 된 사건이었다.

포르투갈전과 이탈리아전, 스페인전으로 이어진 판정시비는 한동안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가 됐다. “판정이 편파적이었다”는 비판에 대한 반박은 “개최국으로 대접받는 수준 이상이 아니었다”, “상대편이 우리보다 잘하는 팀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비하하는 꼴”이라는 내용들이었다. 나보다 ‘우월한’ 상대방에 주눅들어 있다는 불만이었다. 김남일이 ‘터프가이’나 ‘불량소년’ 이미지로 10대 소녀들에게 매력을 끄는 것 이상으로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은 세계적인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기죽지 않는 모습 때문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의 지적대로 김남일의 모습은 위계나 서열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인된 약체라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강팀이 자연스럽게 행하는 파울마저도 눈치를 보며 해야 하는 서러움에서 그는 자유롭다. 상명하복과 위계질서가 내면화된 기성세대로서는 노력해도 해낼 수 없는 당당함이 나이를 불문한 지지층을 형성한 셈이다.  

미국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이을용 선수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하라는 기자의 주문에 대한 김남일의 답변 “위로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욕 좀 먹어야 돼요.”
  
웬만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이런 대답을 하진 못할 것이다.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만약 홍명보나 황선홍이 이런 말을 했으면 대표팀 내 분위기는 썰렁해졌을 것이고 시청자들은 “너무 심한 거 아냐?”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남일의 이 코멘트는 너무나 ‘김남일다워서’시청자들의 웃음을 한번 터뜨리게 할 뿐이었다. 김남일 자신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김남일은 언론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스스럼이 없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다른 선수들처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거나 “팬들의 성원에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전형성이나 상투적인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나온 질문에 “방송용 멘트로 할까요? 솔직하게 말할까요?” 하고 장난스럽게 물어보거나 좋아하는 여성상을 대답하면서 “내일 (스포츠)신문 1면에 나오겠네”라고 말한다.  

팬사이트에는 거의 날마다 김남일 어록이 추가된다. 환영행사가 있던 부평의 모교에서 사인을 해달라고 한 팬이 던진 티셔츠가 얼굴에 맞자 “너, 죽을래요?” 말했다거나 재활치료병원에서 만난 사람이 “김남일 선수 맞죠?” 하고 물으니 “아닌데요, 김넘일인데요”라고 했다는 식의 에피소드들이다. 솔직함과 버무려진 그의 즉흥적인 유머감각은 텔레비전쇼에서 연예인들이 준비해온 개인기와는 다르다. 자신을 대상화하는 시선들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한 태도다. 그러나 그는 매우 영리하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의 지적처럼 그가 툭툭 내뱉는 말은 근엄한 사람들에게는 건방지게 보일 수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는다. 의식적인 준비 없이도 자신의 튀는 발언의 수위조절을 할 줄 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가 남기는 말들은 거칠고 가볍지만 준비된 농담이나 진지한 비판보다 오히려 세련되게 느껴진다.

7월2일 월드컵성공 국민대축제에서 다른 선수들에 이어 마이크를 받은 김남일이 자신을 소개했다. “나이트에 가고 싶은 미드필더 김남일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최근 불고 있는 김남일 신드롬에서 늘 지적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가 겪은 시련과 극복이다. 축구를 그만두고 돈을 벌고자 했을 만큼 어려웠던 가정환경과 나이트 웨이터라는 ‘바닥생활’을 딛고 일어나 세계를 놀라게 한 축구선수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성공을 한편의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감동적이지만 이런 드라마는 진부하다. 망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대박을 터뜨릴 소재는 결코 아니다. 게다가 설기현도, 이천수도 운동화 한 켤레 사기 힘든 역경을 딛고 일어선 드라마의 주인공이긴 매한가지다.



[사진]월드컵 미국전에서의 김남일.
한 선수와 시비가 붙자 몰려온 8명의 다른 선수들과
그 큰눈을 부라리며 ‘맞장뜨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남일은 자신의 ‘성공시대’를 묵직한 감동버전이 아니라 경쾌한 코믹버전으로 바꿔놓아 대박을 터뜨렸다. 감동버전이라면 그는 가출한 뒤 했던 나이트클럽 웨이터 생활을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나이트클럽 근처에도 어슬렁거리지 않는 결론이라야겠지만, 그는 경기 끝나고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나이트”라고 웃으며 고백했다. 공중파 3사의 전파를 통해 방송되는 국민대축제에서, 대통령을 뒤에 세워놓고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버젓이 테이블 앞 웨이터류의 멘트까지 날린다. 이런 김남일 앞에서 그의 과거를 동정하는 것은 바보짓이 된다.

<나는 미소년이 좋다>의 지은이 남승희씨는 “과거의 불쾌한 일들에 대해 김남일이나 가족이 보여주는 태도는 통쾌한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흠결이 될 수도 있는 과거전력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럼없이 농담거리로 삼을 수 있는 ‘쿨함’이 김남일 드라마가 가진 전복적 힘이다.  

한국의 축구가 월드컵 4강신화를 만들어내지 않았더라면, 김남일이 빼어난 수비수가 아니었더라면, 또한 그에게 준수한 외모가 없었더라면 김남일에 대한 환호성은 지금까지 전국에 메아리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런 전제에 여느 인기인이 보여주지 못한 김남일의 개성이 화학작용을 해 환호성을 신드롬으로 바꿔놓았다.  

의학용어인 신드롬은 어떤 공통성이 있는 일련의 병적 징후를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두산대백과사전). 김남일 신드롬은 월드컵 첫골 기록시간을 깬 한국-터키전 첫골만큼이나 우발적이고 돌출적으로 보이지만, 브라운관을 통해 쏟아져나오는 스타들로는 메우지 못한 대중의 갈증이 빚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김은형 기자



‘자존심 회복’의 카타르시스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이 보는 김남일 신드롬  

장안에 화제가 된 배칠수의 패러디방송 엽기DJ에 따라붙은 멘트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에게 해줬으면 하는 말”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속내를 반영해주는 사람과 사건에 열광한다. 자신이 갖고 싶은 외모, 성격, 능력, 명예 또는 부…. 그 요소들은 시대와 가치관에 따라 바뀌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를 투영시킬 우상을 찾는다. 월드컵이 끝나고 후폭풍처럼 김남일 신드롬이 몰아쳤다. 그라운드에서 보인 능력과 특성이 작용했지만, 지금처럼 인기가 증폭되는 까닭은 그가 대중의 감성과 기호를 충실히 담아내는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마음과마음 원장은 김남일이 작동하는 사회심리적 코드를 세 가지로 나누어 짚었다.  

첫째는 자존심이다. 김남일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역사적으로 상처받은 자존심이 회복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줬다. 미국전 때 상대 선수들과 9 대 1로 맞붙어 승강이를 하고, 동료를 때리는 이탈리아 선수를 맞받아치고, 지단이 다쳤을 때 몸값 운운하는 기자들에게 “내 연봉에서 까라고 하세요” 하는 등 그의 행동과 말에서는 직설적이고 주눅들지 않는 배짱이 묻어났다.

둘째는 자아의 명확성이다. 김남일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대면한다. 우리 사회에서 누구든 ‘자아의 경계’를 지키고 살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도 어리고, 매니저가 특별히 관리해주지도 않는데 당당하게 자아중심적인 태도를 보이는 김남일에게서는 ‘본능의 힘’이 느껴진다. 자아에 대한 갈망이 있는 이들에게 이런 태도는 근원적 만족감을 준다.

셋째는 자기 조절 능력이다. 사람들은 그의 솔직함이 성장배경과 성격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이 지나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 까닭은 솔직함의 수위를 조절하는 심리적인 성숙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폼 잡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타일은 중요하게 생각한다”거나 “사람들 앞에 설 때는 옷을 잘 갖춰입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정혜신 원장은 ‘김남일다움’에 열광하는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중의 거대한 욕구가 표출된 것이라 본다. 10여년 전 X세대가 “내 멋대로 한다”고 외치며 등장했을 때 기성세대와 가치관의 충돌을 겪었다면, 시간과 함께 그 충돌들은 뒤섞이고 다듬어졌다. 사회적 훈련기를 거친 것이다. 그 결과 기성세대마저 자아 욕구에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정서를 갖게 됐다. 최근 쏟아지는 외도·불륜은 그런 세태의 일부다.

또한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사회나 권력, 역사나 관습에 내맡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쥐어주는 대로 보여주는 대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를 중심에 놓고 싶어한다. 단적인 흐름이 노사모나 붉은악마였다. 권력 앞에서 무력했던 개인들이 권력을 대상으로 동등한 힘을 발휘하며 의견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정 원장은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세상과 만나는 수위를 조절하는 김남일의 특성이 이런 대중의 욕구나 사회적 흐름과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한다.

김소희 기자



섬소년,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김남일은 1977년 3월14일 인천 앞바다의 작은 섬 대무의도에서 태어났다. 어업을 하던 김재기(51)씨의 아들 3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그는, 인천 송월초등학교 시절 축구를 시작했다. 부평동중과 부평고를 거쳐 한양대를 졸업했고, 2000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축구부 선배들의 가혹한 체벌 때문에 축구를 포기하고 가출해 나이트 클럽 웨이터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의 호소로 다시 축구를 시작한 것은 잘 알려진 에피소드. 95년 아시아학생선수권대회, 96년 아시아청소년 선수권대회, 99년 킹스컵 대회에서 대표선수로 참가해 우승컵을 쥐었고, 주전은 아니었지만 같은 해 시드니 올림픽의 대표선수로도 뛰었다. 98년 12월 아시안게임 베트남전에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참가해 월드컵 직전까지 21게임의 A매치 경기에 참가했으며, 2001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개장을 기념해 열린 크로아티아전에서는 한골을 넣기도 했다.  

180cm의 키에 75kg의 신체조건과 뚝심 있는 스타일로 K리그에서 나름대로의 인정을 받으며 선수생활을 했지만 잦은 실책과 매끄럽지 못한 공수전환 등으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지난해 여름, 월드컵 대표팀의 유럽 전지훈련 때 전격발탁됐을 때도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훈련기간 중 가진 체코와의 평가전에 처음 투입돼 잦은 실책을 범하며 우리 팀이 0 대 5로 패하는 데 일조해 대표팀에서 탈락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으나 히딩크 감독은 그의 뚝심과 집요한 승부근성을 높이 사 결국 대표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안착했다. 월드컵 직전 프랑스와의 평가전 때 지단의 발을 묶어 깊은 인상을 심어준 김남일은 부상을 당했는데도 계속 출전해, 스페인전과 4강전에 이르기까지 경기마다에서 수비실력을 빛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소희 기자




'꽃미남’을 뛰어넘다

여성들의 노골화된 욕망을 진원지로 한 김남일 바람… ‘오빠의 계보학’을 말한다
    
1930년대 후반 서울 동양극장 앞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뤘다. 동양극장 간판스타인 황철을 보기 위해 장안의 여성들이 아침부터 차려입고 몰려든 탓이다. 황철을 향한 여성들의 마음은 반세기 뒤 속옷을 벗어던지며 ‘오빠’에 까무라친 여성들의 심정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표현방식이 다르고 표현주체가 한정됐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당시 내놓고 황철을 사모할 수 있던 이들은 기생과 신여성들뿐이었다.  
  
‘오빠들의 코드’는 무엇이었나

[사진] 오빠를 향한 열광은 한 시대의 욕망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김남일을 향한 뜨거운 바람은 과거보다 광범위하고 훨씬 노골화된 우리 시대 여성들의 욕망을 진원지로 한다. (스포츠투데이)

어느 시대나 ‘오빠’는 있었다. 그리고 누구나 ‘오빠 신드롬’의 효시는 자신의 우상인 ‘오빠’로부터 출발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의 바탕에는 자신의 ‘오빠’를 절대화하고 자신의 욕망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속성이 깔려 있다. 따라서 오빠를 향한 열광은 한 시대의 욕망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김남일을 향한 뜨거운 바람은 과거보다 광범위하고, 훨씬 노골화된 우리 시대 여성들의 욕망을 진원지로 하고 있다.  
  
감정을 감추는 게 미덕인 시대를 벗어나면서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오빠’를 찾아냈고, 이들의 뜨거운 사랑 속에 수많은 ‘오빠들’들이 명멸했다. 6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는 ‘낭만파’ 배호 오빠가 있었다. 그 뒤를 이은 남진·나훈아 오빠는 ‘씩씩한 사나이’의 기상을 내보이며 가는 곳마다 여성팬들을 몰고 다녔다. 조용필 오빠는 ‘비범함’으로 지존의 자리에 우뚝 서서 80년대를 열었다. ‘이단아’ 서태지는 80년대와 90년대를 결별시키며 전복적 쾌락을 안겨줬다. 금기된 욕망의 빗장을 연 90년대에는 터프가이·섹시가이·쿨가이·꽃미남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오며 단독자가 아닌 ‘군’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서로 뒤섞였다. 그 결과 터프가이의 변종인 사고뭉치 악동들과 꽃미남의 변종인 미소가 아름다운 착한 소년들까지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항목들은 빠르게 분화됐다. 그 아찔한 속도감 속에서 김남일이 등장한 것이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의 표현에 따르면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나 본인도 “어리둥절하다”는 김남일 신드롬은 대를 이어 발전해온 사회적 감성을 벗어나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오빠의 계보학’은 여성들의 욕망과 함께 한 시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해방 전 새로운 문물이 대중에게 확산될 때 여성들은 가수 남인수의 깔끔함에 목을 맸다. “남인수는 잘 때 머리가 흐트러질까봐 목침을 베고 잔다더라”는 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돌아보며 한숨지었다. 깔끔함은 곧 세련됨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때였다. 해방과 전쟁이라는 아수라장을 뒤로 하고 여성들은 갈증을 달래듯 낭만을 찾았다.

요절한 가수 배호는 벽에 기대어 노래를 할 정도로 야리야리한 매력을 풍겼다. 노래 부르고 쓰러지길 반복하던 그는 뭇 여성들의 가슴을 뻥 뚫어놓고는 안개처럼 떠났다. 그 상처 때문인지 여성들은 야성미를 물씬 풍기는 남진·나훈아에 열광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도회로 몰려오면서 남성을 향한 욕망이 노골화되던 시대였다. 도회 지향이냐 고향 지향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남진·나훈아가 작동한 강력한 코드는 성적 매력이었다.
  
계산되지도, 기획되지도 않았다



<font  color=006391>[사진] 명멸한 수많은 ‘오빠’들. 왼쪽부터 배호, 남진, 나훈아, 조용필, 서태지


조용필이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오빠 신드롬을 업그레이드하기 전, 오빠 신드롬에는 중요한 실험무대들이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트로트가 아닌 자기 목소리를 내건 다양한 포크가수들이 쏟아져나온 것이다. 그룹 ‘어니언스’가 ‘양파들’로 ‘코인즈’가 ‘엽전들’로 ‘바니걸스’가 ‘토끼소녀’로 강제개명되는 시절에도 이미 감성의 변주를 맞본 대중들의 취향까지 ‘오와 열을 맞춰’ 줄세울 수는 없었다. 이런 배경을 딛고 등극한 조용필은 트로트에서 록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대중의 높은 눈높이와 넓은 취향을 만족시켰다.

90년대는 서태지가 열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힌 뛰어난 뮤지션인 동시에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가려서 보여주는 발군의 기획자이기도 했다. 서태지가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유례없는 신드롬을 낳았다면, 그 뒤의 스타들은 제2의 서태지 신화를 꿈꾸는 다른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때부터는 결과로서의 신드롬이 아니라 목적이나 목표로서의 신드롬이 자리잡았다. 치밀하고 정교한 스타시스템에 따라 외모나 실력으로는 모자라 분위기까지도 차별화된 스타들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만들기 좋은’ 까닭에 오빠들의 연령대는 급속도로 낮아졌다.  

그러나 김남일이 몰고온 파장은 ‘오빠의 계보학’만으로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의 인기는 최근의 스타시스템과는 달리 계산되지도 기획되지도 않은 탓이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축구선수이기 전에 모델로 먼저 알려진 안정환이 그라운드에서의 생생한 땀방울로 이미지를 바꿨다면, 김남일은 예고없이 드러나 충격을 준 경우다. 이미지가 아닌 현실에서 튀어나온 까닭에 오히려 김남일 신드롬이라는 현상은 그 시작과 끝이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화려한 태극전사들의 플레이를 보며 팬들은 이미지가 아닌 실체로서의 스타에 눈을 떴다. 그러나 다수의 여성들이 선택한 대상은 안정환이나 홍명보나 송종국이 아니라 말 많고 탈 많은 김남일이다. 아름다운 꽃미남도, 듬직한 큰오빠도, 바른생활 소년도 아닌 ‘말썽꾸러기 옆집 소년’ 같은 김남일에게 빠져든 것이다. 이를 두고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이동연 사무차장은 “월드컵 4강진출이라는 신화적 성적과 노는 맛을 일깨워준 응원문화가 강력한 기폭제가 된 것 같다”고 진단한다. 지난 98년 월드컵이 끝나고 이동국·고종수·김은중 등이 수많은 여성팬을 확보했지만, 지금의 김남일 신드롬과는 거리가 있었다. 김남일은 축구가 좋고, 이기는 게 좋고, 노니까 좋다는 지난 6월 한달 대중의 눈을 번쩍 뜨게 한 ‘세 가지 발견’을 고루 만족시킨 존재다.
  
불안하지만 도발적 매력
  
월드컵 직전까지 여성들의 욕망과 대중의 감성은 꽃미남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미소년이 좋다>를 쓴 남승희씨는 그 까닭을 “여성들의 주체성·독립성이 커지면서 자신이 리드할 수 있는 남성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다. 보기에 좋아 품기 좋고 자신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착한 미소년들이 당연히 관계의 대리만족 대상이 된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김남일은 꽃미남 퍼레이드의 방향을 틀었다. 그 효과는 ‘미남’에 ‘근육질’을 더한 정도의 진전이 아닌 듯하다. 네티즌 김주은씨는 여성들의 새로운 욕망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김남일과 꽃미남이 다른 점’이라는 글에서 “김남일은 함께 모험을 할 수 있는 상대”라고 설명한다. “김남일은 결혼 상대로서의 안정감을 주지는 않지만 함께 휴가를 떠나고 싶은, 불안하지만 도발적인 매력이 있다. 그와는 유쾌한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김남일은 재미있고 의리 있으면서도 나를 묶어두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러한 관계에 대한 욕망은 여성팬들이 들고 나오는 “남일아 불 꺼라”, “남일아 나이트 가자”는 노골적이고 용감한 미니 플래카드의 문구에서 도드라진다.

7월21일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 4만2천여명의 관중이 몰리는 등 월드컵에 이어 K리그의 열기가 끝간 데 없이 치솟고 있다. 공연장을 찾아 오빠를 외치던 여성팬들이 앞다퉈 축구장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연예계 스타의 사인 여러장을 축구선수 사인 한장과 바꾸려는 거래의 열기도 식을 줄 모른다. 연예스타의 매력이 이미지 조작으로 ‘관리’될 수 있다면 축구스타의 매력은 관리될 수가 없다. 그라운드는 선수의 실력을 정직하게 내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김남일 신드롬이 자리잡고 있는 ‘위태롭고도 자극적인’ 지점일 것이다.  

김은형 기자



멀리서~~
211.185.54.***
몇개 더 있는데.. 나중에 추가 할께요.. 2003-04-26
12:23:22

수정 삭제
ㄴㅌㅇ
220.79.111.***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멀리서님~~
또 올려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월드컵 에 관한 책은 거의다 가지고 있는데...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2003-04-26
18:39:43

수정 삭제
바양
211.217.212.***
섹스어필..육체적 관능이라...ㅎㅎㅎㅎㅎ-ㅅ-;;; 2003-04-28
15:38:17

수정 삭제
hiranoo
211.243.177.***
불안하지만 도발적 매력이라.... ㅋㅋ 첨 읽는 기사가 많네요~ 2003-05-02
23:10:58

수정 삭제
아이
218.239.85.***
정말 멋있는 기사군요 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 2003-05-10
21:29:32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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