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리그 관전기〉정윤수씨, "지역구 스타를 만들자"

2003-04-19 15:35:43, Hit : 3300, IP : 211.190.12.***

작성자 : 대한축구협회

축구 칼럼니스트 정윤수씨/sportal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는 지난 4월 12일 개막된 K2리그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K2리그 관전기를 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관전기는 조만간 구성될 K2리그 명예기자들이 올려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저명한 문화평론가이면서 현재 K2리그 추진위원으로 활동중인 정윤수 씨의 관전기입니다.

앞으로 축구팬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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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험멜코리아 : 서산시민축구단 경기(4월13일, 의정부 공설운동장)

모든 시작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안고 출발하는 법. 지난 주말을 시작으로 그야말로 대장정, 그 첫발을 내디딘 k-2리그는 월드컵 4강으로 압축되는 한국 축구의 전반적 수준 향상이라는 교두보(가능성)와 전략전술의 미비(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필자는 그 관찰의 대상으로 의정부공설운동장을 찾았다. 봄 햇살은 화사하고 잔디는 푸르렀다. 바야흐로 축구의 계절. 관중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그 많고 적음을 얘기할 때는 아니다. 보기에 따라서 이를테면 '춘계실업연맹전' 같은 예전의 틀에 비해 대단히 많은 수이며 5만여 명을 수용한다는 부산아시아드 경기장의 어느 k리그 경기보다 더 많아 보이는 관중이기도 하다.

지금 나는 일부러 과장하고 서로 격려하기 위하여 '이만하면 많이 왔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조촐한 관중들이 바로 k2리그의 승패를 좌우할 상징적 관중이며 그들의 호기심을 어떻게 즐겁게 자극하여 5천을 지나 1만 여 명의 고정 팬을 확보하는 수준으로 갈 것인지를 우선 고민해야할 숫자라는 점이다.

의정부는 서너겹의 표정을 가지고 있다. 미군부대, 외지인, 신도시, 그리고 복잡하고 어수선한 도시 이미지가 겹쳐져 있다. 이 지역을 연고로 정한 험멜 코리아는 대단한 모험을 한 셈이다.

연고지의 성격(산업적, 문화적)이 뚜렷하고 당분간 그 정체성이 크게 변하지 않을 만한 곳, 혹은 수원이나 인천처럼 다양한 계층과 문화가 있어서 최소한의 교두보를 마련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곳과 달리 의정부는 늘 개발 중인 중급 도시로서 언제나 외지인이 들어오고 또한 떠나가는 곳으로 경제적 자립도 수치와 달리 심미적 자족감이나 지역 정체성이 다소 복잡한 도시다.

이런 곳일수록 그 지역을 대표하고 지역 주민을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이웃으로 이어주는 문화적 브랜드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의정부시당국과 지역 체육계는 험멜 축구단의 연고지 결정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운영과 진행에 따른 제반 사항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험멜 축구단을 그야말로 의정부 시민의 축구팀으로 성숙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렇잖아도 할 일이 많은데 괜히 축구 팀이 하나 들어와서 잔무만 더 늘었다'고 불평을 하는 순간 그 지역은 단지 축구 팀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역자치, 주민자치, 자율행정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앙집권의 틀을 깨고 지역의 주체적 결정에 따른 개별화와 특성화가 주목되는 이 시점에 스스로 유치 활동을 벌이지는 못할 망정 제 발로 찾아오는 견실한 축구단을 그저 '행정 보조'의 하나 쯤으로 여기는 것은 작은 불평 때문에 큰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경우다.

이 점에서 의정부시와 지역 체육단체, 그리고 험멜 코리아는 유기적인 협조 관계로 일단 적절히 출발을 하였으며 앞으로도 더욱 분발과 상호 채찍질이 필요하다.

경기는 서산시민축구단의 승리. 중앙일간지를 통해 '한 편의 영화' 같은 팀으로 소개된 서산이 백중세의 허점을 역이용하여 연거푸 역공을 성공시킨 개가였지만 '한 편의 영화'라고 한다면 험멜도 그에 못지 않다. 아니 지금 k2 리그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선수들이 드라마의 주인공들 아닌가.  



본부석 맞은편의 모습(왼쪽)과 경기에 몰입한 선수들(오른쪽)



그러므로 초기 k2리그의 일차적 과제는 '지역 스타'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스타가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경기력이 남달라야 하고 팬에게 강한 인상을 줄 만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스토리'가 황선홍이나 안정환의 어떤 것일 필요는 없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이너리티'의 감수성에 기반하는 확실한 지역 스타의 탄생은 어렵지 않다. 구단 및 관계자는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 스타를 발굴해야 한다.

그 점에서 양 팀 선수들이 등판에 이름 하나 새기지 못하고 나온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는 k 리그가 월드컵이나 국가대표의 인기에 무임승차하여 스타 마케팅을 한 나머지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 진정한 스타를 발굴하지 못하고 그나마 그 스타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그라운드가 텅 비어버리는 기이한 양상의 재방송이 될 우려가 있다.

지금 당장 등판에 선수 이름을 새겨넣어야 한다. 경기장 안팎에 선수 이름을 내걸어야 하고 팬북과 라인업을 통해 정말 '누가 누군지' 알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관중들은 경기력이 뛰어나거나 스타성이 강한 선수에게 관심을 갖는다.

추상적 집단으로서 '험멜'을 보러 오기는 어렵다. 그러나 잘 뛰는 '황선형'이나 모델 뺨치는 '안종환'을 보러 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냥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다. 한석규나 고소영을 보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이란 구단과 연맹 모두가 관성에 젖은 탓이며 '중소기업 홍보수단'의 하나로 전락시키게 된다.  



유니폼 등번호 위에 아직 이름이 없다


또한 등번호에 선수 이름을 넣는 것은 선수 개인의 인격권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 지금도 k 리그의 절반 가량이 등번호에 기업 상표나 붙이고 있다. 상징에서 실질에서나 선수는 까짓 '하나의 홍보 수단'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승부가 관건이라 해도 자기 이름에 먹칠하는 더티 플레이는 삼간다. 그런데 이름 대신 번호가 붙어 있으면 선수들은 거칠어진다. 자기 이름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으니까 멱살잡이도 불사하게 될 것이다.

선수는 자존심을 먹고 산다 더욱이 k-2 리그의 선수들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헝그리 정신'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아니다. 잃어버린 꿈을 다시 꾸는 축구인들이다. 그들에게 인격권과 자율권과 존엄권을 선물해야 한다. 등번호에 이름을 당장 새겨넣어야 한다. 연맹은 각 구단에게 강권해야 한다. 그래야 스타가 생긴다. 스타가 있어야 구단도 살고 연맹도 산다.

다음, 축구장 문화가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 문제는 술이다. 이 술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k-2리그가 과거 동대문운동장의 혈투로 돌아갈 수도 있고 상암월드컵경기장의 아름다운 관람문화가 될 수도 있다.  



관중석의 술병들


이 사진은 본부석 바로 왼편의 모습이다. 전반전 와중인데 벌써 소주병이 뒹굴고 있다. 동네 축구 아저씨들의 혈기를 어떻게 조절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욕설과 시비는 곧장 그라운드 난입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주위 어디에도 진행요원, 안전요원의 '정중한 제지'가 없다. 물론 무조건 막는다 하면 역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아야 하는 문제다.

우리나라의 축구문화는 어찌되었든 '가족 나들이'의 성격이 짙다. 우리나라는 아직 다층적, 세대별 레저문화를 일상 생활 속에서 누릴 만한 단계가 아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돈과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한꺼번에, 가족이 모두 움직인다.

축구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술병이 뒹굴고 욕설이 오가고 난입사태마저 난다면 그 순간 k2-리그는 과거 동대문운동장의 혈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선 서포터스들이 있다.



험멜의 젊은 서포터들(왼쪽)과 서산을 응원하는 아저씨 서포터들(오른쪽)



형식적인 플래카드와 조기축구회의 단체 관람을 빼고 나면 양 팀 모두 서포터스 2명이 열성으로 성원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구단의 배려, 지원은 거의 없다.

서포터스는 '돈'을 원하지 않는다. 스킨쉽을 원한다. 선수들과 만나고 대화하면서 '공동체성'을 느끼길 원한다. 무슨 지원금 따위를 바라는 서포터스는 한 사람도 없다. 이 순수한 서포터스를 구단을 끌어안아야 한다. 어려운 일 없다. 구단 회식 자리에 초청하면 된다. 좀더 가난한 마음으로, 좀더 아름다운 마음으로, 그야말로 좀더 '헝그리'한 정신으로 서로 만나면 된다.

국가대표팀이나 k리그 프로선수들은 다소간 '우상화'될 필요가 있다. 전국구 스타들은 베일에 가려진 듯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구 스타는 지역주민과 서포터스들과 스킨쉽을 나눠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각 구단의 사무실은 해당 연고지로 확실하게 자리잡을 필요가 있다.

이제 시작이다. '시작치고는 괜찮았다'고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언제나 '시작'은 약간의 기대감, 말하자면 '거품'이 있기 마련이다. 그 거품을 미리 빼고 보면 '시작치고는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은' 상황이다.

k-2리그는 절대 '허황된 꿈'을 꿔서는 안된다. 전국구를 모델로 해서는 안된다. 그야말로 자기 동네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결코 1만 명 이상의 관중은 오기 어렵다. k 리그도 그게 안되는 현실 아닌가. 그러므로 2천 명 관중을 향해 집요하고 소박한 스킨쉽 마케팅을 해야 한다.

협회, 연맹, 구단, 그리고 연고지의 관계자들 모두 올해 최우선 과제는 '연고지 인식 뿌리 내리기'이다. 모든 홍보 마케팅은 '연고지'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가야 한다. 사원들이나 거래업체 직원들 수백 명 모아 공짜 단체 관람시키는 것보다 수십 명의 지역 주민이 2천원이라도 내고 들어오는게 장기적으로 모두가 사는 길이다.

'연고의식', 이것이 실종되면 k리그에 비해 절대적 열세인 중소기업 중심의 k-2 리그는 금새 추락한다. 안전판이 없는 중소기업 구단이다. 그 지역 주민들이 안전판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등판에 이름을 넣어야 하고 중기적으로 팀 이름도 바꿔야 한다. 험멜 코리아가 아니라 '의정부 험멜'이어야 한다. 국민은행이 아니라 '김포kb'이어야 한다.

진정한 헝그리 정신, 지금 k2 리그의 선수들은 아름다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축구 인생의 새 전환기에 그들은 서있는 것이다.

협회, 연맹, 구단이 '선수' 중심의 축구, '주민자치' 시대의 축구, 곧 '연고지 스타' 마케팅으로 집중한다면 오히려 k2 리그는 k리그보다 더 내실있는, 작지만 알찬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장래 축구 스타를 꿈꾸는 해맑은 축구 소년들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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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씨는 1966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으며, 문화비평지 <리뷰>의 편집위원을 역임했습니다.

지난해 월드컵에 즈음해서는 축구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력과 입담으로 각종 매체에 독창적인 축구 칼럼을 선보였으며 2002 월드컵을 입체적 시각으로 분석한 책 <축구장을 보호하라>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음악, 영화, 문화 전 분야에 대한 활동은 물론 K2리그의 추진위원으로 평소의 축구 신념을 펼치고 있습니다.






글: 정윤수(문화 평론가, 축구 칼럼니스트)


ㄴㄱ
152.149.54.***
서울에는 K2리그마저 없단 말이오. ㅜ_ㅜ 2003-04-19
17: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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