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의 영원한 앙숙] 아르헨티나 vs 잉글랜드 박터지는 이유?

2006-05-23 00:23:00, Hit : 4299, IP : 220.94.20.***

작성자 : 석이
이번에야 말로 지난 2002년 예선 탈락의 수모를 극복하고 아르헨티나가 20년만에 우승컵을... 대한민국과 붙으면 어쩔수 없지만...^^ 국가대항전의 더비라고나 할까? 여튼 그들의 역사 이야기임.





[월드컵] 영국하고 아르헨티나가 박터지는 이유

딴지 월드컴 추적팀
2002/06/..


1. 축구




6월 7일 삿포로 경기장, 영국과 아르헨티나 전.

양국 응원단은 입구도 다르고, 좌석도 정반대고, 그리고 출구도 다르게 해서 경기장 내에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도록 조처 됐다. 게다가 경기장 주변에 중무장한 일본 경찰 7천명이 깔려 전시를 방불케 하는 긴장을 연출했고 주변 학교는 오전 수업만 했으며 경기장 내부에는 물대포를 설치했다. 이거 어째 단순한 안전 조처하고는 좀 차원이 다른 것 같지 않나.

이 경기에서 성공시킨 패널티킥을 생애 최고의 순간이며, 생애 가장 만족스런 골이었다고 말한 베컴은 경기 바로 하루 전인 6월 6일 한 기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만약 기회가 온다면 86년 마라도나처럼 하겠냐고.

베컴이 대답했다.

"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물론이다. 당연히 심판한테는 말 안 할 것이다.. 며, 그렇게 해서 게임을 이긴다면 적어도 2년 동안은 손으로 넣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  





2002 아르헨티나 3-5-2

파블로 까바예로[GK], 디에고 플라센테[13], 마우리시오 포체티노[4], 월터 사무엘[6]
하비에르 사네티[8], , 아리엘 오르테가[10], 후안 베론[11], 후안 소린[3], 디에고 시메오네[14]
가브리엘 바티스투타[9], 킬리 곤잘레스[18]

[교체] : 크라우디오 로페스[7], 파블로 아이마르[16], 에르난 크레스포[19]


2002 잉글랜드 4-4-2

데이빗 시맨[GK], 데니 밀스[2], 에쉬리콜[3], 리오 퍼디난드[5], 솔 캠벨[6]
데이비드 베컴[7], 폴 스콜스[8],  오웬 하그리브스[18], 니키버트[21]
에밀 헤스키[11], 마이클 오웬[10]

[교체] 트레버 싱클레어[4], 웨인 브릿지[14], 테디 셰링엄[17]


86년의 마라도나가 뭘 어떻게 했느냐.

86년 멕스코 월드컵 아르헨티나 대 영국 8강전, 후반 5분 경 165cm의 마라도나를 향해 센터링이 올라간다. 골키퍼는 181cm의 쉘턴. 손까지 사용할 쉴턴과 경합해 마라도나가 이 공중볼을 따낼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월드컵 사상 가장 악명 높은 - 나중에 마라도나가 그건 내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라 변명했던 - 핸들링 골이 터진다.

심판은 이를 보지 못했으며, 마라도나는 끝까지 자신의 핸들링을 인정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으며 결국 게임은 2:1로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돌아간다.  

아르헨티나에게 이 경기는 그저 월드컵 본선 경기 중 하나가 아니었다. 시합을 앞 둔 당시 아르헨티나 신문들은 < 프클랜드 전쟁으로 잃어버린 조국의 자존심을 회복하라! >라는 기사로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했었다.

그리고, 마라도나는 훗날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같은 상황이 오면 또 다시 '신의 손'을 사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럴 것이라 답을 한다..

이 경기 후 두 나라가 월드컵에서 다시 만난 건 12년이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전. 아르헨티나 NAM(새로운 아르헨티나 운동)이란 단체가 영국 응원단을 공격하겠다고 공개선언을 하기도 했고,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영유권을 주장하는 전단 수 만장이 뿌려지기도 했던 이 대회에서 2:2 무승부 후 승부차기 4:3으로 영국을 꺾고 아르헨티나가 8강에 오르자 아르헨티나는 기쁨으로 발칵 뒤집어진다. 이 와중에 아르헨티나의 한 TV는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의 것>이라는, 축구와 아무 상관없는 방송을 내보낸다.  

포클랜드, 포클랜드.. 도대체 포클랜드가 어쨌다는 건가.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 가보자.


79년 제 2회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어 이미 천재 소리를 들었던 마라도나가 월드컵 데뷔를 한 것은 82년 스페인 월드컵. 바로 전 대회에서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던 아르헨티나를 이끌었던 당시 21세의 마라도나는 전문가들로부터 펠레 이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개막전인 벨기에 전에서 0-1로 패했으며, 2라운드에서 이탈리아, 브라질에 연속으로 패하며 탈락하고 만다. 게다가 1:3으로 졌던 브라질전에서 마라도나는 퇴장까지 당한다. 그런데,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던 이들에겐 사연이 있었다.

또, 포클랜드다.




82년 스페인 월드컵 첫 경기인 벨기에 vs 아르헨티나 전이 열린 날은 6월 14일. 공교롭게도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영국 항복문서에 공식 서명한 날도 바로 이날, 1982년 6월 14일이다.

대회에 참여하기 전까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의 언론통제에 따라 자기들이 포클랜드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당시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스페인에서 알게 된 포클랜드 전쟁과 관련된 진실에 커다란 충격을 먹었으며 특히 개막전 하루 전에 전해진, 1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며 아르헨티나군이 큰 패배를 당했다 소식에 모두들 숙소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통곡하고 만다.

포클랜드는 그들에게 단순한 섬이 아니었다. 어릴 적 학교에서부터 지도를 그릴 때면 항상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그려 넣고 아르헨티나의 영토로 표기하도록  의식적으로 교육 받았던 그들에게, 포클랜드는 조국의 통합과 자주성을 의미하는 상징적 구심점이었기에 그 충격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포클랜드..

마라도나나 베컴처럼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공개적으로 손을 써서라도 이기고 싶다고 말할 만큼, 조별 예선전에서 패널티킥 차 넣고 생애 최고의 골이라고 말할 만큼, 그렇게 양국을 승부에 집착하게 만드는 포클랜드.. 포클랜드가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도대체 그 사연이 뭔지, 오늘 그걸 함 디벼보기로 하자.

왜?

재밌자나.

 

2. 역사



포클랜드 -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냥 하나의 섬이 아니라 동 포클랜드와 서 포클랜드라는 큰 두 섬과 나머지 2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뤄진 군도 - 이 포클랜드를 둘러싼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이 시작된 것은 종전일인 1982년 6월 14일로부터 겨우 75일 전인 1982년 4월 2일이다. 그러나 이 전쟁의 씨앗이 잉태된 건 사실 세기를 몇 번이나 달리하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이다. 우선 왼쪽 지도에서 포클랜드가 어딨나부터 확인해 보시라.

영국과 영토 분쟁이 났다는데 포클랜드가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중간쯤 되는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아르헨티나 쪽으로 이렇게까지 가까이 있다는 사실, 모르는 사람들 많았을 게다.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 본토에서 약 480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게 얼마나 먼거냐.

동해안에서 독도가 약 220Km 정도 떨어져 있고 부산에서 마라도가 약 286 Kim 떨어져 있으며, 한국과 사이판의 거리가 3,200 Km이고, 하와이까지는 7,500 Km이며 미국까지는 11,500km 정도다.

그럼, 이 포클랜드가 영국하고는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 13,000 Km가 넘는다.  1,300 Km가 아니고 13,000 Km다.

이거 우리나라에서 미국보다 멀고 직선 거리로 프랑스나 이태리 정도 되는 거리다. 이건 거리만 놓고 본다면 한국이 이태리의 시칠리아 섬을 우리 땅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거다.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 놓고 보면 분명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포클랜드를 자기 영토라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듯 보이는데, 이렇게까지 아르헨티나에 가깝고 그렇게까지 영국에서 먼 섬이 어쩌다 영국령이 되었느냐.. 자 이제 몇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일이 이렇게 꼬이게 된 몇 가지 중요한 역사적 포인트를 차근차근 되짚어보자.

[1] 최초의 발견

이 기본적인 것부터 양쪽 주장은 엇갈린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6세기 초 포르투칼과 스페인 사람으로 구성된 마젤란 탐험대가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니 그 연장선 상에서 역사를 풀어보려는 의도다.

영국에서는 또 자기들 나름대로 16세기 말 영국의 항해사 John Davis가 최초라고 주장한다. 영국에서 만든 백과사전 브리태니카에는 그래서 John Davis를 최초 발견자로 떡 하니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사실 둘 다 문서로 확인된 기록은 없다. 그러니 누구 말이 맞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각자 자기 나라 역사 시간엔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2] 최초의 상륙

반면, 섬에 발을 디딘 최초의 상륙자는 17세기 말 영국 탐험대다. 이건 논란이 없는데 이 탐험대는 'Falkland' 자작이라는 당시 해군관료 이름을 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섬의 이름을 짓기도 했다. 적어도 영국이 먼저 이 섬에 발자국을 먼저 남긴 건 맞다.



[3] 최초의 정착

그러나, 이 섬 최초의 주민은 스페인도 영국도 아닌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18세기 중반, 프랑스 항해사 Louis-Antoine de Bougainville가 최초로 동 포클랜드에 정착해 살기 시작한다. 그 이후 이 섬에는 프랑스의 St. Malo에서 온 어부들이 건너와 살게 되는데, 여기서 지금 아르헨티나에서 자기들끼리 부르는 섬의 이름 말비나스 (Malvinas)가 유래된다.

얼마 뒤, 영국 사람들도 건너와 살며 거주하게 되지만 당시 남미 전역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초강국 스페인은 프랑스인들의 거주시설을 사들이고, 영국인 거주민들은 강제로 쫓아 내버린 후, 현재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관리관을 파견, 나폴레옹에 의해 스페인 본국이 점령될 때까지 약 50여년간 이 섬을 식민 지배한다.

[4] 최초의 소유권 주장

식민 본국이었던 스페인이 나폴레옹에 의해 정복되어(1808년) 그 막강했던 힘을 잃자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816년, 아르헨티나는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4년 뒤인 1820년, 최초로 포클랜드에 대한 소유권을 공식 선포하게 된다.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만큼, 스페인이 통치했던 땅은 자기들이 승계한다는 논리였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828년, 아르헨티나는 최초의 아르헨티나 정착민들을 섬에 이주시키고, 도지사에 해당되는 정부관료 그리고 주둔군을 파견한다.

[5] 최초의 충돌

아르헨티나인들이 포클랜드에 최초로 정착한 지 5년 뒤인 1833년, 영국은 섬을 군사력으로 빼앗아 아르헨티나 거주민들과 관료들을 모두 강제로 아르헨티나로 되돌려보낸다. 양국 최초의 충돌이다. 이후, 영국은 천 명 이상의 자국민들을 이주시킨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아르헨티나로서는, 당연히 스페인으로부터 승계했다고 생각했던 자기들 앞 바다의 섬을 졸지에 영국에 빼앗긴 것이다. 반면, 영국으로서는 융성했던 스페인의 힘에 밀려 잠시 쫓겨났었지만, 어디까지나 자기들이 먼저 상륙했었고 또 먼저 거주하고 살았던 섬을 되찾은 것이었고.

역사는 그렇게 꼬이기 시작한다.


빅토리아 여왕


그러나, 갓 독립한 약소국에 불과했던 19세기의 아르헨티나가 당시 전세계 인구의 25%를 지배하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영광의 빅토리아 여왕시대를 구가하던 영국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건 무모하다 못해 바보 같은 짓이었다. 홍콩이 영국에 넘어간 것도 바로 이 즈음이니 말이다.

아르헨티나로서는 힘이 약해 자신의 땅을 빼앗겼다 생각했으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이 작은 섬이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외세에 저항하는 국가 자주성의 상징이 된 역사적 연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에게 포클랜드는, 일본우익들이 독도 소유를 주장해 가끔 우리를 빡돌게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격정적이고 극단적 감정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섬'이다. 독도야 우리가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지만, 포클랜드는 아직도 영국이 차지하고 있으니 더욱 더.

아르헨티나는 그 이후로 150여년을 줄기차게 씨바거리게 되는데, 2차 대전 이후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하에 있던 국가들의 독립과 영토 반환이란 세계적 추세에 힘을 얻어 1964년 UN의 탈식민지 위원회에 이 포클랜드 반환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게 되고 1965년 UN으로부터 양국은 평화적으로 협상하라는 권고를 받게 된다. 그 이후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양국은 17년간 계속해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다.  

그러나.

비록 주민보다 펭귄이 더 많이 사는 군도라지만 근해의 석유와 남극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영국으로서는 포클랜드를 그냥 내놓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영국은 자신들이 이 섬에 최초로 상륙했고 최근 150년 이상을 '공개적이고 지속적이며 실효적으로 점거, 점유, 관리하고 있으므로'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만약에 < 포클랜드의 현지 거주민들이 원한다면 > 주권을 넘길 수도 있다고 공식 입장만 계속 반복한다.

얼핏 대단히 합리적인 것 같지만 이게 아주 교묘한 답인 것이, 포클랜드에는 이미 150년이 넘도록 오로지 영어만 사용하는 영국 이민자들만 2,000여명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이 아무도 없는 데 아르헨티나로의 귀속을 원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UN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아르헨티나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누가 최초로 발견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영국인들이 최초로 상륙했고, 프랑스인들이 최초로 거주했으며, 스페인인들이 최초로 식민지화했고, 아르헨티나인들이 최초로 주둔군을 보낸 걸, 영국인들이 자기들이 가장 먼저 밟은 땅이라고 힘으로 밀고 들어와 지금까지 차지하고 있는 섬, 그게 바로 포클랜드다.

 

3. 정치



그러는 사이..

아르헨티나는 20세기 들어 정치적 대격변을 겪는데, 어느 정도였나 하면 1916년부터 1976년 사이에 대통령이 무려 22번이나 바뀐다. 특히, 1930년대부터 등장한 군부 세력은 실권과 재집권을 거듭하다 - 이 사이 유명한 페론과 그의 아내 에비타가 등장한다 - 1976년 각군 사령관으로 이뤄진 구테타 세력이 집권하면서부터 아예 군부 지들끼리 돌아가며 대통령을 해먹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거 박정희의 구테타 집권 이후 '하나회'의 전두환이 등장, 선배에게서 보고 배운 가락대로 대통령까지 해먹고 다시 자기 친구 노태우에게 대통령을 물려주는, 우리나라 군사정권 스토리와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우리나라 '하나회'에 해당될 76년 구테타 군부 장성들..


우선 육군 중장이었던 '비델라'가 76년부터 81년까지 5년간 대통령을 해먹는다. 그를 이어 '비올라'가 대통령에 오르나 그 해 12월을 넘기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내분이 일어나 해군제독과 육군대장의 지지를 받은 '갈티에리' 참모총장이 81년12월 대통령에 오른다.

이들 정치군인집단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구테타로 집권한 군부가 세계 여느 나라에서 으레 그렇게 하듯, 좌익세력을 때려잡는다는 명목으로 - 어쩌면 이유도 다들 그렇게 똑같은지 - 무수한 시민들을 잡아 가두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행방불명 시킨다. 이 기간 동안 어떠한 기록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숫자가, 최소한 12,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은퇴한 한 아르헨티나 해군 조종사가 1995년 집필한 '비행' 이란 제하의 고백서에 따르면, 이 군사정권 시절 잡혀 온 사람들은 비행기에 태워 마약을 먹인 후 대서양 한 가운데로 날아가 발가벗긴 후 그냥 비행기 밖으로 던져버렸다고 한다. 물고기의 밥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 군사정권 시절 동안, 저자가 복무하던 공군기지에 매주 수요일 수 십 명씩 트럭에 실려 왔으며, 자신의 부대에서만도 최소한 2000여 명을 그런 식으로 대서양 한 가운데 던져 버렸다고 한다.

비옥하고 광대한 토지에서 나는 농축산물을 기반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에 공급하는 식량을 거의 혼자서 감당하며 194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5대 부국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던 이 나라는, 그렇게 반복되는 군부의 구테타와 그로 인한 불안정한 정치, 치솟는 실직율, 이반하는 민심, 인기위주의 경제정책 등으로 인해 1981년에는 이미 인플레이션이 600%에 이르고, GDP는 끊임없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수렁 같은 경기침체를 장기간 겪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가 없다. 6.10항쟁처럼 연일 계속되는 시민들의 시위 속에 취임한 '갈티에리' 대통령은 뭔가 강력한 돌파구를 필요로 했다. 우리 군바리들이 올림픽을 생각해냈듯, 충분히 강력해서 내부의 모든 불만을 잊게 만들고, 지금 나라가 희망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사람들을 현혹하고 설득할만한 획기적이고 강력한 뭔가가 필요했던 게다.

우리네 정치 군바리들이 막판에 몰려 6.29 선언을 생각해냈다면, '갈티에리'는 과연 군바리 출신답게, 그 돌파구로 포클랜드의 무력 탈환을 생각해내기에 이른다.

 

4. 전쟁




 

사실, 이 갈티에리 대통령의 탈환 계획이 유혈 전쟁으로까지 확대된 것은 아르헨티나 군부의 여러 가지 판단착오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훗날 각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이 초기 포클랜드에 기습적으로 군대를 보낼 때만 하더라도 그것이 영국과의 전면적인 전투로 발전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군부 내부에 거의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우선 그들 스스로 포클랜드를 되찾아야 한다는 명분이 너무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서, 내부적으로 국민들을 한 번에 통합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이토록 명백한 건은 국제사회의 지지도 아주 수월히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또한, 일단 점령하고 나면 영광의 대영제국 시절을 뒤로한 체 NATO에서의 역할 감소, 군비 축소, 장기적 경기침체와 인기 하락까지 겪고 있던 대처가 설마 그때까지 대부분의 영국 국민들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그 머나먼 곳의 작은 섬을 되찾으려고 그 먼 곳까지 엄청난 비용을 써가며 군대를 보내겠냐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일단 점령하고 나면 미국 외교의 기본 기조인 '먼로 독트린' - 미대륙 국가들에 대한 유럽 지배나 그 연장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 과 1947년 미대륙 국가들끼리 체결했던, 외부의 침입이 있을 경우 서로 협력한다는 '리오 조약'에 근거해, 미국이 중간에 나서서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중재를 할 것이고 몇 가지 조건에만 합의하면 아마도 그 땅은 국제적 지지를 받는 아르헨티나 수중으로 손 쉽게 넘어올 것이라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비록 급증하는 데모 참여인원 등 급박한 국내 상황때문에 원래 계획보다 몇 달을 앞당기긴 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작전을 생각해 왔고 또한 군사력에 있어서도 결코 불리할 것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특히 공군력에 있어서 마하 2의 초음속 전투기 Mirage III와 Super Etnedard는 음속 이하의 영국 Harrier보다 빨라 공중전에서 훨씬 유리하고, 아르헨티나 쪽에서는 포클랜드가 비행거리 이내에 있었던 반면 영국에게 그 엄청난 거리는 - 군사작전의 한계로도 작용하겠지만 - 무엇보다 경제침체를 겪는 영국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1982년 4월 2일, 포클랜드(말비나스)
탈환을 알리는 아르헨티나 신문기사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르헨티나의 군부는 남미의 전통적 마쵸이즘에 입각한 근거 없는 남성우월적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갈티에리' 대통령은 침공이 있던 4월 2일 TV에 나와,  

자신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포클랜드를 되찾을 것이지만, "두 여자가 통치하는 - 엘리자베스 여왕과 대처수상 - 나라에서는 자신들의 자녀들을 희생시키기 꺼려할 것" 이라고까지 말한다.  

이에, 모든 데모가 중지되고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당연히 열광한다. '독도'를 되찾았으니까.  

벗트, 그러나.  

역사가 언제 그렇게 호락호락 했던가.

침공한 몇 일간은 모든 것이 자기들 뜻대로 돌아가는 듯 했다. 거의 아무런 저항 없이 압도적 숫자로 섬을 수비하고 있던 소수 군대와 섬의 영국 관리를 항복시켰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군사적 판단에는 몇 가지 결정적 오류가 있었다.  

공군전이 될 것이라 예상한 것까지는 옳았고 또 자신들의 전투기가 더 우수한 것까지는 정확한 판단이었으나, 본토에서 출격해서는 공중전을 펼칠 만큼 연료를 실을 수 없어 본토가 아니라 포클랜드에서 출격했어야 했으나 포클랜드의 활주로는 전투기가 출격할 만큼 길지가 못했다. 그런데, 실제 계획보다 몇 달 앞서 침공함에 따라 그 활주로를 늘이는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실어 나를 배조차 준비하지 못하고 전쟁을 시작해버리고 만 것이다.  

나중에 배를 마련했을 때에는 이미 영국의 잠수함이 근해를 차지해버린 후였다. 결국 실제 전투에 있어서는 공중전으로는 영국의 주력 기종인 Harrier기를 단 한 대도 격추시키지 못했다. 반면 영국의 Harrier기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렸지만, 수직이착륙이 가능했으므로 어디서 건 출격이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다른 미대륙의 국가들이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것이고, 국제사회가 분명한 명분이 있는 자기들 편이 될 것이란 생각은 냉엄한 국제 정치에서는 무식한 군바리들의 순진한 착각에 불과했다. 그들은 다른 나라는 고사하고 남미 국가들로부터도 전폭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  

반면, 영국은 발 빠른 외교로 몇 일만에 UN과 NATO, EEC의 지지를 얻어 냈으며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아르헨티나 바로 이웃나라인 칠레의 피노체트까지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훗날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하필 영국에 병 치료차 간 건 그런 배경이 있었다 - 영국은 매정하게 그를 배신했지만. 특히, 레이건 미 행정부는 아르헨티나를 도와주기는커녕 정반대로 영국에 군사적 지원과 아르헨티나에 경제 제재 초지를 내린다. 이 조처는 미국 정부가 남미에서 신뢰를 크게 상실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 외에도 전면적인 전쟁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겼던 군부는 예비군조차 소집하지도 않았고, 10,000이나 되는 군대를 보냈지만 그들 대부분은 경험 없는 신병들로 도대체 전쟁을 할 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여러 판단 착오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영국의 '두 여자'에 대한 것이었다.



대처수상은 전쟁이 포클랜드를 침공하자 단호한 의회 연설을 통해 영국민들을 단합 시키고 즉시 군사작전을 명령한다. 그는 이 포클랜드 전쟁에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 나는 패배의 가능성을 결코 믿지 않는다. 그런 가능성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


왕실은 또 어떠했는가. 제2차 세계대전시 자원 입대하여 군용트럭을 몸소 운전하기까지 했다는 여왕 엘리자베스의 아들 앤드류는, 즉시 참전한다.  

왕자가 직접 참전했다는 걸 아는 아르헨티나 쪽으로부터 최우선 공격 목표가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감수하고 헬기 조종사로서 전쟁에 참전한 앤드류 왕자는, 포클랜드를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는 영국의 의지를 국제 사회에 분명하게 천명하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이 나자 가장 위험한 함대에 가장 위험한 임무를 가장 먼저 자임해 최전선으로 달려가는 왕자를 보고 충천했을 영국군의 사기, 지도층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말할 필요도 없고.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노블리스 오블리는는 프랑스어로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는 말. 귀족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리스)' 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해야 한다는 귀족 가문의 가훈인 셈


아.. 씨바..
이런 거 우리하고 진짜 다르다...
갑자기 욕 나올라고 한다...

여하간, 이 두 여인의 의지는 '갈티에리' 대통령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고, 전쟁 전체를 통털어 그가 가장 잘못 판단한 'factor'였다. 물론, 그렇다고 전쟁 자체가 아주 간단하게 영국의 승리로 끝난 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도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한때 세계 5대 부국 중 하나였던 국가 아니던가.  



영국이 "Conqueror" 잠수함을 앞세워 포클랜드의 전쟁에서 단일 건으로서는 가장 많은 사상자인 362명을 전사시키며 아르헨티나 주력 구축함 'General Belgrano'를 격침시켜 기세를 드높이자 - 이 격침사건은 전쟁지역으로 선포됐던 금지구역 바깥에서 이뤄진 것으로 영국정부는 불필요한 인명살상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 아르헨티나 역시 엑조세 미사일로 영국의 대표적인 구축함 'HMS Sheffield'를 격침시키는 등 나름대로 전쟁은 주고 받는 혼전 양상을 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전투기들이 영국 구축함에 퍼부은 폭탄의 겨우 20%만 폭발했다고 할만큼 준비되지 않은 체 벌어진 전쟁에서, 왕자까지 목숨 걸고 싸우러 나온 나라하고 붙어서 도대체 어떻게 이길 수가 있었겠는가.  



이 전쟁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아르헨티나 공군 조종사들의 우수한 조종술과 용감한 군인정신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진행될수록 우월한 무기로 무장한 영국의 우세로 기울어 결국 포클랜드에 상륙한 영국의 코만도와 공수부대의 투입으로 이뤄진 육지전 끝에 당시 포클랜드에 주둔하고 있던 주력군을 대부분을 포로로 하여, 전쟁이 시작된 지 75일째이자 82년 스페인 월드컵 개막 경기가 열린 날인 6월 14일, 아르헨티나는 항복문서에 서명하게 되고 전쟁은 끝을 맺는다.

'독도'를 다시 뺏긴 것이다.


5. 그 후



아르헨티나 쪽에서 655명, 영국 쪽에서 236명이 전사하며 공식적으로 74일만에 끝난, 사실 국제 분쟁으로는 짧은 기간 내에 종결 지어진 그리 크지 않은 전쟁이었지만, 이 한 번의 전쟁은 양 국가를 완전히 다른 스테이지에 들어서도록 밀어넣은 역사적 터닝 포인트였다.  

이 패배로 아르헨티나 '칼티에리' 대통령은 종전 다음 달 사임하고 그의 뒤를, 돌아가며 해먹는다는 그들의 규칙에 따라, 또 다시 군부 출신 비뇨네 장군이 잇게 되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마침내 굴복, 다음 해 민간정부가 들어서게 되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전통적으로 유지해왔던 군대에 대한 신뢰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고, 국가적 리더쉽 자체가 엄청나게 위축되고 만다.  

반면, 영국에서는 집권 초기 인기가 저조했던 대처가 그 다음 해의 선거에서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표 차로 승리하면서 영국 현대사에서 최장기로 기록되는 집권체제를 구축하게 되고, 여기서 얻은 인기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훗날 '대처리즘'이라 불리는 강력한 경제정책을 펼쳐, 19세기 대영정국의 영광만 반추하며 열패감에 빠져 2류 국가로 전락해가던 영국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고, 20세기에 걸맞는 현대국가로 튜닝 해낸다.



사실, 포클랜드가 아르헨티나의 영토이어야 하는 지리적, 역사적 근거는 충분했고 지금도 충분하다. 또 자신들 스스로가 설득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명분도 부족함이 없었다.  

만약, 영국이 이미 19세기 전세계적 식민지배 경험을 가졌기에, 국제적 영토 분쟁을 다루는데 있어 외교적으로 아르헨티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하지만 않았다면.. 또, 아르헨티나의 군바리들이 이 문제를 자신들의 정치기반 연장이나 인기회복 수단이라는 정략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덤벼들었다면... 그랬다면 아마 포클랜드는 지금 아르헨티나의 영토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왕조 이후 스스로의 투쟁 결과가 아니라 일본 패전이란 외부 환경의 변화로 창졸간에, 과거 봉건사회의 규범과 질서에 대한 사회적 정리나 마무리 없이.. 또 친일세력에 대한 정치적 단죄나 청산 없이.. 갑자기 모든 중간과정을 건너 뛰어 근대적 민주국가라는 껍데기만 뒤집어 썼기에.. 그 이후 50여 년을 구테타와 군부독재를 반복하며 역사 속을 헤매야 했던 우리 경험은, 결코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독립운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폴레옹의 스페인 점령으로 갑자기 식민지배가 끝나면서 느닷없이 독립을 맞이하게 된 아르헨티나는, 그 과정에서 과거 식민역사에 대한 정리나 부역자들에 대한 청산 등을 밀도있게 해내지 못했고 그렇게 국가적 리더쉽의 확고한 정통성이 미비한 상황에서 근대국가의 성립과정 통과하게 된다. 아르헨티나 역사를 지겹게 수놓는 구테타와 군부 독재, 민간정부의 교체는 바로 그렇게 해서 잉태된 것이었다.

결국 그런 역사 속에 탄생한 정통성 없는 군부와 그런 정통성의 결여가 초래한 조급함은 포클랜드 전쟁을 그 출발부터 뒤틀어 버린 것이다. 역사의 인과와 아귀는 언제나 그렇게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만약..

  


종전 후 계속해서 독도를 일본이 차지하면서 일본인들을 거주시키고 자위대를 배치하고 공개적이고 실효적으로 지금껏 점유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끼리 삼국사기를 쥐고 흔들며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했다고 분노한다고 독도가 우리 영토가 되느냐... 물론, 절대로 아니다.

일본도 나름대로 17세기 덕천 막부시대부터 자신들이 실효적으로 점유했다고 주장할 것이고, 1905년 국제법이 요구하는 절차에 따라 '다케시마'라 고시했다고 할 것이며, 한국본토보다 오히려 일본본토에 더 가깝다고 주장할 것이고, 김정호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고 떠들 것이며,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일본영토를 되찾았는데 독도도 그때 찾았어야 했던 영토라고 떠들 것이다.  

그리고, 전셰계의 유명 지도에 동해를 'sea of Japan'이라고 표기하도록 만들고 있는 일본은 제 3자가 보기에 '일본 해 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이 당연히 일본의 영토로 보이도록 꾸준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향후 국제 사법재판소로 이 문제를 끌고 가거나 정치적, 외교적 쟁점화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반면, 우리 쪽의 독도 영토 고시는 해방 후인 1952년에 하게 되니 결코 유리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끔 국내 정치인들이 일본 우익의 독도 발언에 흥분하며 미디어를 통해 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백만인 서명하자.. 어쩌자 하며 떠들어대는 흥분은 - 영토 문제가 국가적 자존심과 가장 민감하게 연결된 것이라 한편으로 이해는 가지만 - 결국, 닭짓이다. 독도 관련해 우리끼리 감정적으로 흥분하기만 하는 건, 아르헨티나가 오늘날까지 180년 동안 자기들끼리 떠들어봐야 전혀 아무 것도 해결이 안 되는 것처럼, 국제적 영토 분쟁이란 이슈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 섬을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이 우리 쪽인 이상, 아예 분쟁의 흔적 자체를 남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유리하다는 말이다.  

19세기에 이미 자국민과 군대와 관리까지 보내고도 영국에게 쫓겨나서, 포클랜드는 '영국 제국주의가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섬이라는 아르헨티나의 주장이 UN 탈식민지 위원회에 타당한 문제제기라고 받아들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 걸 봐도 지금 이 순간 '공개적이고 지속적이며 실효적으로 점유, 점거'하고 있다는 것의 중요성은 매우 결정적이다.

그래서 그런 감정적 대응 보다는 일본이 뭐라고 떠들던 완전히 생까버리고, 조용하고 냉정하게 우리가 수집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사적 사료를 모아 보강하고, 국제법 레벨에서 방어논리를 개발하고, 내셔널 지오그래피 같은 곳을 통해 독도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거 만들고, 독도를 관광 패키지화 하기도 하면서 그 곳이 당연히 우리 영토임을 자연스럽게 증명하는 국제적 데이타와 기록들을 꾸준히 쌓아 가는 것.. 그런 노력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거다.  

그리고, 만에 하나 독도 전쟁 나면 제일 먼저 정치인 군면제 아들들부터 소집해, 해병 상륙대로 가장 먼저 투입하고..  

특히 국민사기에는 이 조치가 가장 효과가 크지 않겠나 싶다..

 

6. 그리고, 다시 축구


그런 역사가 있어 영국하고 아르헨티나가 그렇게 으르렁대는 거.. 그건 그렇다 치면... 걔네들이 올림픽 농구 결승전에서 그렇게까지 목숨 걸고 맞붙는다는 소리 들어봤나..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배구 포클랜드'라는 말 들어봤나.. 올림픽 다른 종목은 뭐 국가 대항전 아닌가.. 왜 하필 축구에서만 이런 소리가 나오느냐..  

그건 축구가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전쟁에 가까운 게임이기 때문이다.  

축구는 총력전이다.  

축구는 일단 호각 불고 선수들이 운동장에 흩어져 각자 자기 포지션에서 뛰기 시작하면, 전후반 골대 한 번 바꿀 때를 제외하곤 이닝도 없고, 쿼터도 없고, 작전타임도 없고, 돌아가며 서비스 하는 것도 없고, 공수교대도 없고.. 그야말로 90분을 쉬지 않고 달리고 어깨 싸움하고 밀치고 머리로 받고 걷어 차며 상대를 꺾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총력전이다. 이건, 전쟁인게다.  

우리가 폴란드를 꺾었을 때 온 국민이 흥분한 정도는, 그래서 사실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나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였다. 우리 역사에서 최근 100년 사이 도대체 언제 한 번 이 정도의 국가적 레벨에서 승리를 경험해 봤는가, 또 언제 우리가 그런 승리를 중심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이런 정도로 한 덩어리가 되는 경험을 해봤는가.  

우리는 최근 100년 동안 일본에게 당하고, 남북이 전쟁하고, 국토가 단절되고, 지역이 분열하고, 이웃과 분리되고, 가족은 해체된 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남과 달라야 한다는 재촉을 끊임없이 받으며 살아온 족속이다.  

군집 생활하는 동물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온 순간부터 제 한 몸 간수를 위해  방어적이고 소심하게 위축되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불안정하게 서로로부터 소외된 개체로 뚝뚝 떨어져 지난 100여년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조건 없이 일순간에 모든 종류의 단절과 분열을 한꺼번에 뛰어넘는, 생물학적 본능에 가까운 동질감을 폭발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런 종류의 감정을 우린 지난 100년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응원 후 휴지 줍는 것만 봐도 가슴이 찡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휴지 줍는다고 선진 질서의식 운운하는 닭대가리 언론들아, 우리가 뭐 줄 잘 서고 거리 청결하게 해야겠다는 투철한 질서의식으로 휴지 줍는 줄 아냐?. 그렇게 한꺼번에 얻어진 동질감, 자신감,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려고, 그런 걸 해치는 짓은 스스로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서 나오는, 종족 보호 본능에 가까운 행위들인 것이다.  

처음 맨 처음 시작한 이야기로 다시 되돌아가서... ( 나오는 대로 씨불이다 보니 오늘 별 이야길 다한다.. )

 


아르헨티나 전에서 승리한 후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는 나폴레옹을 꺾었던 넬슨 제독의 동상 옆에 베컴의 밀랍인형이 섰단다. 월드컵 우승했다고 세운 게 아니라 조별 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패널티 킥으로 이겼다고. 축구 아니면 이런 거 불가능하다.  

그런데, 축구에서 이긴다고 우리나라 서민이 잘 살게 되냐.. 경제가 나아지냐며 그만 오바할 것을 촉구하는.. 아주 쿨하게 아무도 눈치 못 챈 헛점을 잡아내며 날카롭게 지적하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 앞에서 화들짝 놀래며 대단히 차분하고 날카롭다고 마구 칭찬을 해준 후, 사람 없는 곳으로 데려가 조용히 '멘탈 쎄라피'를 권하고 싶다. 씨ㅂ새끼들.


우리 골 넣는 장면만 벌써 수 십번은 봤는데도, 그걸 또 보면 아직도 울컥울컥하고 눈물이 고일라고 청승을 떠는 나도, 치료 받아야 할지 그건 의문이다만... 그런 사람 나밖에 없나.. 하여간, 16강도 16강이지만.. 난 그들을 보면.. 자꾸 눈물이 날라고 그런다.. 아.. 씨바..  
 

우리 세금 좀 더 걷자.. 하다못해 걔네들 축구화라도 한 켤레 더 사줘야 맘이 가라앉을 것 같다...  

   
대~한민국 !
짝짝짝짝짝!




월드컵리포트팀 긴급파견꼬붕
딴지총수 (chongsu@ddanzi.com)


파즈
61.109.109.***
바보 같은 얘기지만... 저기 제일 위에 지도를 보고 아프리카 지도인 줄 알고 아르헨티나가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였었나 하고 잠시 작은 혼란에 빠졌었습니다-ㅅ-; 제가 지금 밤새 과제를 하느라 잠을 못잔 상태에서 봤더니 잠시 정신이 혼미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혼미함)

여러 가지 전반적인 지식은 없었던 지라 아르헨티나랑 잉글랜드가 라이벌이라는 것만 알았지 이면에 저런 사정이 숨어있는 줄은 몰랐습니다요. 우리나라와 일본과 비슷한 관계에 있는 나라들이네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숙적.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야 말로 스포츠 내셔널리즘의 대표적인 예들이었군요. 조금 안타깝습니다. 이 글을 진작 읽을 걸 그랬어요. 제가 방금 전에 막 끝마친 과제의 주제가 바로 스포츠 내셔널리즘 이었거든요-ㅅ-;;; 아주 좋은 예가 되었을 것인데... 지금 와서 새로 추가하고 껴 넣자니 제 머리가 안돌아가므로 그건 패스;;
축구에 대해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축구는 전쟁이다'라는 저 표현에 더더욱 동의하게 됩니다. 정말 4년 전에는 대단했었죠. 저는 참여 안하기는 했었습니다만, 온 국민이 '빨갱이가 되자'(요표현은 작년에 풀던 비문학 문제집의 한 지문에 쓰였던 표현이었음)라는 슬로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쳤으니... 축구야 말로 내셔널리즘을 선동하는 대표 주자인가 봅니다.

여러 더비의 존재는 참으로 고맙지요-.- 아래아래아래글인 보카와 리베르의 경기나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기는 팀과 써포터 혹은 국가간에는 피 터지는 싸움이겠지만... 저 같은 사람은 그저 재밌는 축구경기를, 때로는 피도 튀기는 (헉; ) 경기를 보여줘서 감사할 따름이지요.

저는 네덜란드의 우승에 오백 원 걸겠나이다 후후후후 (뜬금없다-ㅅ-;; )
2006-05-23
06: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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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쓰
202.169.215.***
에고 오늘도 석이님이 올려주신 멋진 글 보네요... 아르헨티나 하면... 4년전에 월드컵 예선탈락 했을때 오라방이 오죽 황당했으면 저에게 신문에 나온 아르헨티나선수 사진까지 보여주며 "야 야 떨어졌어" 라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당시 아르헨티나는 저에게 그저 오라방으로 인해 알게된 축구 잘하는 나라 정도로 밖에 인식이 안돼있었는데... 오늘 많은거 배우네요. 읽으면서 계속 우리나라와 일본 생각이 났습니다. 느무 비슷한거돠...( -_) 포클랜드를 향한 그들의 마음도 충분히 동감 되고요. 그 섬이 영국것이다 혹은 아르헨티나것이다 라고 확정짓고 있진 않슴다... 그런 문제가 워낙 헷갈리고 감도 잘 안잡히는 것들이라... 허나 독도는 분.명.히 우리것이다 라고 하는거 보면 남의 나라 문제라 그닥 자신이 없어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하핫. 그냥 그렇게 축구에서 피터지게 '신의 손'(왠지 여기서 폭소했...__)을 써서라도 이기겠다 하는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네요. 전쟁에 임하는 영국의 자세는 감동이었달까 부럽달까... 군면제가 엄청난 이슈가 되고있는 우리나라에선 뭐... 안타깝네요. 4년전 일은 무슨짓을 해도 잊혀지지 않을, 그때 선수들이 썼던 훈련장 잔디 사진만 봐도 눈물이 울컥 할 정도로 저에겐 크나큰 인생의 감동인 겁니다... 이번 월드컵때 그때와 같은 급의 감동을 느낄수 있을것 같진 않지만... 아무래도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하핫. 그래도 이번 역시 끝없는 기쁨을 간직한 채 그때 여름은 좋았지 라고 말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난 겨울이다 헤헷. 돈모아서 정말 선수분들 축구화라도 사드리고 싶...으하하. 그래도, 라이벌전은 재밌지만, 너무 많은 신의손 에피소드는 서로 황당할거 같습니다 크크. 2006-05-23
15: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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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
220.94.20.***
나야 저런 역사적인 사실을 몰랐을때 부터 아르헨티나의 축구팀을 사랑하다 보니 조금은 편파적인 면이 있습니다. 나이스에서도 각자 응원하는 팀을 가진 분들이 있죠. 퍼거슨님(잉글랜드.. 다미님 싸이에 보니 잉글 레플이더군요.), 엔리케님(프랑스), 은사자(스페인)등등요. 아무래도 제가 좀 편파적이다 보니 괜히 다른팀을 응원하는 분들에게 죄송...^^;; 스포츠도 그런것 같아요. 어떤 특정팀이나 선수에게 감정이입이 되면 몰입도가 많이 차이가 나더라고요.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는 맘에 드는 팀은 이탈리아 입니다. 2002년 월드컵때 뻘짓을 해서 좀 미움은 받았지만 이탈리아 축구를 보면 "수비의 미학"이라는게 보이더라고요. 특히나 2000유로 대회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수비는 정말 대단했지요. 그 당시 거의 매 경기를 생중계로 본것 같은데 정말.......ㄷㄷㄷ 그 자체였지요.

월드컵이란 대회를 하면 사실 강팀이라고 분류되는 팀들의 실력은 사실 종이 한장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 축구는 성적에 비해서 재미는 없고, 스페인, 네덜란드 축구는 화려하긴 한데 실속이 별로 없고... 한때 나도 이팀들은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드는 생각은 이팀의 실력이 거기까지 라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잉글랜드는 그 극강의 선수들에 비해서 수비축구로만 일관하는 모습은 영~ 여튼 제가 생각하는 월드컵에서 팀 색깔은 이렇답니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공격과 함께 수비가 약해서는 절대 좋은 성적 거두기 어렵다고 봐요. 아무리 좋은 공격을 가진 팀이라도 말이죠.
2006-05-23
19: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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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
220.94.20.***
아래 글은 밑에 아래 축구 글을 올린 양광모 분이 아르헨티나 탈락때 즈음해서 올린글인데요. 많이 사랑하시는가봐요. 저야 뭐 분석까지의 능력은 안되지만... 아마 이번 월드컵에서 아르헨 관련 글을 후추에서 볼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목 : 응원할 팀이 없어져 버렸다 - 아르헨티나 - 그러나..


양광모 [2002-06-13] .... 아르헨티나 탈락후.. (포루투갈 경기 전에 쓴 글)


아 이제 포효하는 바티골을 더이상 볼수 없게 되었군여 바티스투타의 눈물에 하루종일 우울했습니다. 카니쟈는 단1분도 뛰지 못하고 허망하게 벤치에서 좇겨 났습니다. 오언의 페널티킥 상황도 반칙이 아니었지만 최강임을 자부했기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구스타보 로페스도 벤치만 지켰고 가야르도 역시 끝내 투입되지 못했습니다. 시메오네 선수의 부진한 모습은 처음으로 보았기에 충격이 큽니다. 가장 믿었던 베론이 벤치를 지킬줄이야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남미 최고의 센터백 아얄라의 결장이 이런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남미예선과 독일,이탈리아와의 평가전에서 보여주었던 창조적인 축구가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스웨덴 과의 경기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너무 자기 위치만 고수하면서 공간창출을 못했습니다. 밤새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면서 문제점을 분석했지만 도저히 쓸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아르헨티나 축구는 그저 보고 즐기고 감탄하면서 축구를 느끼면 되는 것이기에... 아르헨티나 스쿼드에 포함되지 않은 리켈메나 사비올라등 여러선수들이 생각납니다

아르헨티나 축구를 남미 축구에 유럽 축구를 가미시킨 것이라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유럽의 축구를 배격합니다. 그들의 장점은 배우지만 자신들의 독특한 축구로 녹여 버립니다. 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식의 축구 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거칠음이 사라졌습니다. 너무 신사적이어서 의외였습니다

신문선이 아르헨티나 축구를 깡패축구라 말할때 화가 납니다. 아르헨티나의 거친 축구는 유럽과 그 차원을 달리합니다. 분데스리가의 거친 태클이 상대선수의 발목을 향해 들어가고 프랑스의 비에라가 팔꿈치로 상대선수의 얼굴을 가격하는 것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거칠음은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비도덕적인 행위가 절대 아닙니다. 그들의 거칠음은 정열의 표현일 뿐입니다. 축구가 갖고 있는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그 무엇인가를 표출해내는 역동성입니다

이제 바티골은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AS로마로 이적하여 피오렌티나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도 슬픔에 빠졌던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피오렌티나팬 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내면서 그를 그리워 하던 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전 이탈리아 축구 팬들은 감동 했었습니다.

의리의 사나이 바티스투타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가장 잔혹한 킬러로 불리우는 크레스포는 계속 뛰겠지요. 사네티와 킬리 곤잘레스 그리고 소린,로페스도 그라운드를 누빌 것입니다. 바티의 눈물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알렉산드로,로마롤린,로드리게스,에레라 등의 황금 미드필더 들이 그뒤를 받춰주고 있어 창조적 축구의 전통과 각도의 예술을 이어갈 것 입니다.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열렬히 응원해준 일본의 아르헨축구 신봉자들에게 감사를 표시합니다. 단지 아르헨티나 축구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과 슬픔을 같이 하고자 합니다



응원할 팀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독특한 팀이 있습니다.

90분 내내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압박하고 강한 정신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그런 팀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조차 그정도의 압박을 하는 팀이 별로 없습니다. 바로 우리 조국 대한민국팀 입니다.

강한 프레싱으로 상대를 당혹해하게 만들고 지속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가장 매력적인 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도 강한 프레싱과 엄청난 기동력을 보이지만 그들의 공격은 간헐적이고 지속성이 없습니다 수비지향적이고 역습을 노리는 스타일이며 거친 반칙이 난무하는 팀일 뿐입니다.

지금 세계축구팬들은 대한민국의 빠르고 열정적인 축구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더 많은 경기를 치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2라운드 진출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승점 9점으로 올라가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 졌지만 7점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포르투갈 강팀이라고 하지만 미국과의 경기에서 제대로 된 찬스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공격하려 하고 창조적으로 움직이며 수많은 찬스를 만들어 냅니다. 미국은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지만 우리팀은 그들의 스피드를 제압했습니다. 미국과의 경기는 상당히 빠른 템포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그다지 빨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상대를 우리의 템포에 맞게 지배했기 때문이며 이러한 경기 지배로 인해 치열한 공방전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빠른 템포의 경기로 보이지 않았던 것 입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치열한 순간 스피드 경쟁이 있었고 서로 볼을 다투는 순간 스피드와 순발력에 우위를 점하였기에 미국은 자신들의 템포와 의도대로 게임을 이끌지 못했던 것입니다. 비즐리도 송종국에게 완전히 눌렸고 도노반도 이을용에게 막혀 장기인 스피드를 자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우위를 점한것은 맥브라이드의 헤딩 제공권 뿐이었고 그것 조차도 우리 미드필더의 기동력으로 무력화 시켰습니다. 레이나는 출전 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제대로 보여 준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미국이 비긴 것은 그들에게 있어 천만 다행이었고 운이 좋았을 뿐이었습니다. 우리팀은 단지 운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긴 것이고 이을용 ,최용수,설기현에게 행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그들에게 잘못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선수들은 세계 축구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승점 3점을 벌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역동적이고 장관을 이루는 응원문화와 함께 대한민국 축구는 세계를 열광시킬 것이라 믿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르헨티나 팀은 탈락했지만 그들보다 더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우리 대표 선수들은 멈추지 않고 경기를 계속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혼의 축구 입니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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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포루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꺽고 4강까지 갔지요. 그러고 보면 "혼의 축구"라는 말 참 근사합니다. 이번 월드컵에도 혼의축구를 보여줄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 중심에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뛰는 선수들의 활약이 좀더 비중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2006-05-23
20: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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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
220.94.20.***
몇년전에 인터넷에 前 국회위원이었던 분이 독도 관련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여론 몰이를 한적이 있는데... 절대 어설프게 접근하면 안됩니다. 지금 당장 국제재판소에 독도 문제가 거론되면 돈질로 장악한 일본의 외교력이 당하기 쉽상 입니다. 준비는 해야겠지만 조용한 외교가 필요한게 독도 문제 같아요. 2006-05-23
20: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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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쓰
202.169.215.***
혼의축구 라는 말... 정말 멋지네요. 그러고보니 오빠가 보여줬던 신문 사진속의 그 선수가 바티스투타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이름 억양이 왠지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하핫. 이사람이 그렇게 유명하고 그렇게 잘하는 선수라고 오라방이 말해줬던 기억이 나네요. 바티골...바티골... 언제 제대로 된걸로 꼭 한번 보고싶습니다. 독도는...또 냄비현상에 발끈해서 준비 부족한 상태로 대응하면 바로 넘어갈거 같아요. 그게 일본쪽이 바라는거 같기도 하고. 계~속 여기저기 건들면서 성질 긁는게 하핫. 저도 석이님처럼 최대한 치밀하게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가 맞서는게 낫지않을까 생각합니다. 고구려도 백두산도 왜이리 건드는 사람들이 많은건지. 그만큼 우리나라가 좋은나라다 뭐 그런...으하하. 그것들을 지킬수 있는 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근데 요 며칠 계속 딴지일보 글만 읽다가 양광모님 글 읽으니까 갑자기 그 말투가 어색하게 들리는겁니돠 으하하ㅠ_ㅠ 두 글의 말투의 갭은 장난아니지만 둘 다 모두 정말 좋은글이네요 헤헷. 2006-05-23
23: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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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
220.94.20.***
전 바티스투타 보다는 1990년 준우승 멤버로 활약한 전직 육상 선수 출신 "바람의 아들" 카니지아 선수가 먼저 생각납니다. 그날 경기에 출전도 못하고 벤치에서 항의하다 퇴장당했지요. 90년 절대적 열세로 준우승까지 오르는데에는 마라도나, 골키퍼 고이코치아와 더불어서 캬니지아의 활약이 절대적이었지요.

바티골의 눈물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장면이었지요. 그 긴머리를 치렁치렁하게 하고 서럽게 울던 모습...ㅠ.ㅠ
2006-05-24
01: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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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10.106.185.***
재밌게 잘 봤습니다. 축구란 것이 참 그렇네요.. 90분간의 경기일뿐인데.. 그 90분을 위해 가끔은 모든 걸 걸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흠,, 선수들의 눈물.. 결코 자기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겠죠. 하나의 작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결국 축구는 전쟁이네요..^^;; 내 팀의 명예를 걸고 오직 승리만을 위한.. 2006-05-26
11: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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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
220.94.20.***
축구는 전쟁이 아니라.... 그런 대리 만족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이 두팀 관계 말고도 민족, 국가등으로 얽혀진 역사 문제를 축구를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는것이지요. 그게 또한 경기를 볼때 피를 끊게 하는 요인도 되고요. 여튼 뭐 축구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것은 조금 그렇지만 여러 상황에 대입하는것은 분명한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오직 돈이나 벌려는 방송들이 쌩 오바는....ㅠ.ㅠ 왠만하면 참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결국 최후의 승자는 방송인지라 경기력이 맘에 들지 않거나 하면 지들이 제일 난리를 부리는것들도 방송이지요. 참고로 지난 월드컵에서 방송 3사와 SK가 가장 이득을 본겁니다. 물론 국민들도 그 성취감이나 뭐 그런걸 느꼈고요. (우린 무형, 방송과 기업은 유형)
2006-05-26
22: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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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
220.94.20.***

바티스투타 골 동영상....
2006-05-29
20: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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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_-v
59.3.24.***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왜 라이벌인가 했는데 이런 속 사정이 있었던거군요. 역시 축구는 내셔널리즘이 가장 강한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축구는 전쟁이다.. 라는 말이 있는가 싶기도 하고...

02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건 우승후보급의 실력을 가진 팀이라는 것, 아르헨티나 경제가 마~이 어려워서 선수들이 꼭 이기고 싶어한다든지... 은근히 감상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Don't cry for me, Argentina.. 만 알고 있었습니다-_-ㅋㅋ
사실 뭐.. 그 땐 한국경기만 챙겨봐서 경기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고요;;;

이번에 코트디부아르랑 했던 경기를 전반전만 봤는데..
빠른 경기 속도는 아니었습니다만 패스 플레이를 잘 하는 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ㅅ-ㅋㅋ
그래도 전........ 잉글랜드가 더 좋습니다;;;;
2006-06-27
01: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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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
220.94.20.***
Don't cry for me, Argentina.. 이 노래는 원래 마돈나가 처음 불렀는데 올리비아 뉴트존이나 샤라브라이트만 등 많은 가수들이 불렀어요. 위에 링크된 음악은 샤라 브라이트만 곡이지요. 이번에 8강전에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두팀의 대결이라 잉글랜드만 신났음. 독일 vs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vs 포루투갈.... 2006-06-27
21: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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