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기] 2006년 독일 월드컵 남미예선전 아르헨vs칠레

2003-09-09 01:24:04, Hit : 3170, IP : 61.105.169.***

작성자 : 수리

1.

스포츠 도박사들중 단 3%만이 칠레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FiFA 랭킹 6위, 아르헨티나 74위, 칠레. 아르헨티나는 칠레를 상대로 최근 20경기 무패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칠레상대 아르헨 전적은 72전 49승 18무 5패. 아르헨은 강합니다. 남미에게 허락된 본선 티켓은 단 4장. 골득실로도 순위가 바뀔 수 있는, 그야말로 생존투쟁을 해야하는 상황입니다. 단순히 본선을 앞둔 모의고사와는 다릅니다. 손가락끝이 간질거릴 정도로 긴장했습니다. 전 아르헨이 구사하는 정교한 패스와 세련된 조직력의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이죠. 아이마르, 베론, 사비올라, 크레스포..열광하여 마지 않는 영웅들입니다. 경기는 아르헨의 홈경기, 경기장을 가득메운 남미의 열기가 고대로 느껴집니다.

02.
--------------크레스포----------
---------아이마르------------
-----------------디알레산드로------------
킬리곤잘레스----------------------델가도
-----------베론-------자네티--------------
-------사무엘----아얄라----포체티노----
----------------카바예로------------------

아르헨의 초반 포메이션입니다. 공격적입니다. 크레스포-아이마르-디 알레산드로의 중앙공격을 돕는 킬리 곤잘레스- 델가도의 측면공격은 아르헨의 공격력을 배가시킬 것입니다. 팀의 주장 아얄라는 스리백의 중앙에서 뛰게 되었고, 베론은 공수를 연결하는 앵커맨의 역할을 하게 되겠죠. 자네티는 수비가담과 공격가담을 동시에 하면서 공간이 넓은 델가도에게 힘을 실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든든한 카바예로 골키퍼.

03.

전반전이 시작됩니다. 역시 예상대로 초반부터 매우 미드필드 싸움이 치열합니다. 칠레 선수들은 파이팅이 좋습니다. 챙챙-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날 것 같은 중원 싸움입니다. 그러나 탐색전이 끝나고, 아르헨의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빠르고 정교한 패스윅, 최종 수비라인에서 최전방의 크레스포, 아이마르에게 논스톱으로 연결되는 패스는 매우 위력적입니다. 오른쪽의 델가도는 종횡으로 오가며 공간을 뒤흔들어놓습니다. 매우 발이 빠른 선수입니다. 현대 축구에서 스피드는 이제 필수항목입니다. 스피드가 단지 주력이 좋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공간을 점유하게 만드는 스피듣, 볼 컨트롤시에 볼의 스피드와 힘까지 살릴 수 있는 패스를 만들어내는 스피드. 델가도는 빠르고 영리하며, 매우 정확한 크로스를 가졌습니다. 중앙 공격이 베론-디 알레산드로-아이마르로 이어진다면, 측면은 자네티-델가도로 이어집니다. 델가도의 돌파에 이은 정확한 크로스는 크레스포에게 연결됩니다.


04.
전반전의 베론은 마치 패스의 샘처럼 보입니다. 그에게 연결된 공은 날카롭게 최전방까지 올라옵니다. 콸콸콸- 볼이 흘러넘칩니다. 그는 아르헨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디 알레산드로는 감각과 유연성이 타고 난 듯 합니다. 강력한 왼발슛과 넓은 활동폭. 게다가 파이팅이좋습니다. 그는 미드필드와 공격수간의 간격을 종횡무진 누빕니다. 베론이 정교한 한땀한땀의 손자수라면, 디 알레산드로는 기계자수쯤? 거기다 머리 스타일도 베론과 똑같습니다^ ^


05.
전반 13분경 크레스포에게 결정적인 첫번째 찬스가 찾아옵니다. 베론이 크레스포에게 찔러준 볼은 완벽하게 옵사이드 벽을 깨고 단독찬스를 만들어주지만 수비수몸에 걸려 균형을 잃고 슛팅은 무산 됩니다. 그때까지 이렇다할 슛팅이 없던 아르헨은 탄력을 받습니다. 빠르던 경기템포가 더할 수 없이 빨라지죠. 선제골의 중요성을 선수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때까지 최전방 공격수와 수비수들의 호흡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은 아르헨 자국 리그보다,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고 그만큼 조직력을 갖출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반 20분 베론-엘가도-크레스포로 이어지는 패스로 크레스포에게 또 한 차례의 찬스가 나지만 머리에 닿는 볼의 힘이 약해 기회가 날아갑니다.베론의 강하고, 공격수의 위치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패스가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06.
그러나 칠레수비수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들은 촘촘하고 끈질긴 수비를 펼칩니다. 아르헨선수가 공을 잡으면 칠레 선수의 대부분이 수비를 하기위해 내려옵니다. 경기를 절대적 우세로 몰고가면서도 공간이 좁아지고, 아르헨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는 일이 생기자 강력한 왼발 슛팅을 가진 킬리 곤잘레스 선수가 나섭니다. 중거리슛팅입니다. 한번은 37살의 노장, 파키야 골키퍼정면에 안겨주게 됩니다. 그러나 전반 32분, 수비수들이 한순간 한 방향으로 몰린 사이 그의 강력한 왼발 슛이 그물을 뒤흔들었습니다. 1:0이 되었습니다. 대망의 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 첫 경기에서 터진 첫번째 골입니다. 칠레의 수비수들이 예측하지 못한 완벽한 골입니다.


07.

경기는 점점 거세집니다. 선취골을 허용했다는 사실에 흥분하기 시작한 칠레선수들입니다. 남미선수들은 심리적으로 자멸하기 쉬운 스타일처럼 보였습니다. 지나친 흥분은 집중력을 흐트러놓기 마련이고, 순간의 방심은 상대에게 기회를 줍니다. 선취골을 넣은 뒤, 아르헨의 공격은 날카롭고 빠르지만 훨씬 여유있어집니다. 발끝에 자석이 달린 것처럼 착착 맞아떨어지는 패스윅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더군요. 이들은 경기를 즐깁니다. 짜릿한 흥분과 함께, 홈관중들의 열광적인 응원이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전반 35분에는 디 알레산드로가 중앙에서 수비수를 속이는 페인팅 동작으로 아이마르에게 볼을 연결시켜줍니다. 아이마르는 늘 그렇듯, 우아하고 세련된 동작으로- 파키야 골키퍼가 나오는 것까지 다 보고 난 뒤 슛팅을 날립니다. 골이 터집니다. 2:0 아르헨은 승리에 한발 더 가까워진것에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08.

전반 40분, 아르헨 슛팅개수 7개 칠레 2개. 절대적 우세입니다. 칠레는 경험이 많은 선수가 적다는 것이 실점후에 그들을 힘들게 합니다. 베론처럼 공수연결의 핵심으로 뛰어줄 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첼시에서 뛰지만, 맨유의 베론은 종종 앵커맨을 맡았고 수비가담력도 좋습니다. 그리고 2:0이 된 뒤, 베론은 수비 가담에 더욱 치중을 합니다. 아르헨은 정확하고 스피드를 살린 패스를공격수에게 그대로 연결시키면서 칠레수비수들에게 부담을 안겨줍니다. 수비수들이 채 마크하지 못한 공격수들을 양산시키는 패스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아르헨의 우세 속에서 전반전이 끝납니다. 이때까지는 승부의 결과는 정해진 것처럼 보였답니다.


09.

후반전, 아르헨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됩니다. 시작되자마자 크레스포에게 세번째 결정적인 찬스가 찾아옵니다. 델가도의 오른쪽 돌파에 이은 크로스입니다. 칠레수비수 뒤쪽으로 정확하게 연결되었지만, 오늘의 크레스포-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듯 기회가 날아갑니다. 움직임이 크레스포 답지 않습니다. 방심한 탓이었을까요? 후반의 아르헨은 전반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무딘 칼날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런 모습을 예상을 했는지, 칠레는 전반보다 공격적입니다. 공격수의 숫자가 많아졌죠. 후반 11분 우리에게 낯익은 아쿠나 선수가 교체되어 들어옵니다. 6번을달고 있네요. 들어오자마자 중거리 슛팅을 날립니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합니다. 의도적으로 디 알레산드로 선수 뒤에서 그를 끌어안으며 진로를 방해하고 괴롭힙니다. 후반 15분, 아르헨 수비수들이 갑자기 살아나기 시작한 칠레의 공격에 당황한 틈을 타 아쿠나가 오른쪽에서 찔러준 볼을 17번 미로세빅 선수가 골로 연결 시킵니다. 순간적으로 아르헨의 스리백이 무너지면서 일어난 실수입니다. 뼈아픈 골을 내준 셈이죠. 경기는 2:1이 되고, 흐름은 뒤집어집니다. 마치 격렬한 허리케인을 만난듯 앞을 예측할 수 없어집니다.



10.

이때부터 경고가 난무하기 시작합니다. 칠레선수들은 전쟁터에 나온 군사들 같습니다. 2:1 상황이 되자, 크레스포는 뭔가 보여주기 위해 움직임은 더욱 냉정을 찾기 어려워집니다. 전반이 마치 선비의 붓놀림처럼 유려한 패스윅으로 이어진 경기였다면, 후반에 그들은 조각조각-흐름을 이어가지 못합니다. 전반 18분 베론이 알메이다와 교체됩니다. 감독은 수비가담을 많이한 베론의 기동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전반 20분, 델가도가 오른쪽으로 중앙으로 올라오면서 수비수를 속이고 골대 안쪽으로 슛팅을 날리지만 골키퍼 차징. 베론이 빠지면서 점점 미드필드와 수비와의 간격이 벌어집니다. 이 틈새를 노린 칠레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죠. 게다가 공격타이밍이 한발 늦어집니다. 빠르고 강한 논스톱패스는 어디로 가고, 그들은 볼을 끌기 시작합니다. 드리블하는 사이 칠레수비수들은 자리를 찾아들어가 공을 걷어냅니다.

11.
후반 23분경, 칠레의 8번 마르텔 선수의 중거리 슛팅이 골대를 살짝 빗나갔습니다. 위기감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칠레 아쿠나 선수는 거친 몸싸움으로 신경전을 유도합니다. 심한 태클을 하고, 아이마르를 밀칩니다. 레드카드를 예상했지만, 주심은 노란카드를 내밀더군요. 후반 25분에 우울한 표정을 한 크레스포와 사비올라가 교체됩니다. 사비올라는 아르헨의 떠오르는 신예입니다. 분위기를 반전시켜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12.
그러나 쫓기기 시작한 아르헨은 델가도의 크로스는 힘이 실려 길어지고, 아이마르의 슛팅은 자꾸 높아만 집니다. 후반 30분에는 칠레 15분 피니아 선수에게 결정적인 슛팅찬스를 내어줍니다. 알메이다는 수비보다 공격쪽에 치중하며 베론의 부재를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31분, 칠레 나비아선수에게 뼈아픈 동점골을 내줍니다. 칠레선수들은 완벽하게 자신감을 회복했고, 이것은 그들이 볼컨트롤함에 있어서 대담하고 공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르헨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것 같습니다. 월드컵 본선의 벽은 이렇게 높습니다.

13.

이제 아르헨은 볼을 가지게 되면 최전방으로 찔러넣어주기 급급합니다. 그곳에는 볼을 골로 연결시켜줄 공격수들이 포진해있기 때문이었겠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통제하기에는 너무나 기가 힌 상황에 온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그곳은 아르헨의 홈이고, 그들은 절대적 우세에 있었으니까요) 무승부라도 엄청난 소득이라고 생각한 칠레선수들의 흥분과, 승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의 아르헨 선수들의 흥분이 최고조에 달합니다. 후반 42분- 사무엘 선수가 인터셉트를 하며 뒤로 돌던 아쿠나 선수를 의도적으로 밟고 지나갑니다. 선수들은 격해지고 혼전이 혈투로 발전할 지경입니다. 주심은 엉겨붙는 선수들을 떼어내고 사무엘과 알바레스에게 퇴장을 명령합니다. 이제 선수는 양팀 모두 열 명씩. 승리는 어느 팀에게 돌아갈까요.

14.

후반 45분, 델가도의 패스를 받은 킬리 곤잘레스 선수의 슛팅이 파키야 골키퍼의 선방에 막힙니다. 오늘 칠레의 수훈선수는 후반에 투입된 아쿠나 선수와 골키퍼 파키야 선수입니다. 후반 46분, 킬리 곤잘레스 선수에게 심한 백태클을 한 칠레 나비야선수가 퇴장당합니다. 이제 칠레선수는 아홉명, 아르헨은 열명입니다.

15.

추가시간 5분. 칠레관중들은 열광합니다. 5분만 버티면 넘을 수 없었던 거대한 산맥 같았던 아르헨과, 그들의 홈에서 무승부를기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칠레는 마지막까지 공격의 끈을 늦추지 않습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사비올라와 아이마르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집니다. 왼쪽에서 사비올라가 달려듭니다. 그리고 아이마르에게 연결되지만, 다시 골대를 빗겨갑니다. 마지막 기회는 이렇게 무산됩니다. 경기 종료. 2:2 무승부입니다.


16.

개인기나 전체 전력, 모두 아르헨의 우세였고 전반전은 그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 경기는 심리적 요인이 얼마나 경기력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케이스입니다. 물론 크레스포의 부진이 없었더라면, 베론을 조금만 더 늦게 교체했더라면, 아이마르의 슛팅이 조금만 더 낮았다면-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경기는 이미 끝났고, 후반전 그들은 심리적 패배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사실상의 칠레의 승리입니다. 승점 1점씩을 나눠가진 두 팀, 2005년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누가 진정한 승자인지 결정이 나겠죠. 아르헨을 응원했던 제게는 많이 아쉬운 경기였지만, 속도와 섬세함을 겸비한 남미축구는 이 새벽의 잠을 빼앗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 자러 가야겠네요. ^ ^


참, 쓸데없는 관전기를 왜 이렇게 길게 썼냐고 물어보시면
졸음을 막기위해 마셨던 커피때문에 잘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겁니다^ ^;

덧.남미예선전 관전기는 남일선수와 하등 관계없는 경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익게방에 남겼습니다-0- 나이스는 김남일 선수의 팬페이지라는 특성화된 장소이니까요.제가 관전기를 쓰는 것은 그저 묵은 습관입니다. 그것도 메모지에 끄적끄적, 그러다 버리던 것을 최근 들어서 긴 문장으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앞으로 관전기를 쓰게 된다면 관전평방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만,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삭제하겠습니다. 괜스레 물을 흐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아, 그리고 누차 말씀드리지만 저는 아는게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내가 본 경기에 대해 일기를 쓴다는 생각으로 쓰는 것이니 실수도 많고, 틀린 점도 많을 것입니다. 나이스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고스럽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_ㅠ


^^
61.76.122.***
우와~수리님 +_+(이 눈빛이 부담스러우시면 안돼요~ㅠ_ㅠ)저같이 축구를 모르는 사람은 님들의 관전평으로 복습하는게 얼마나 큰 공부인데요.제가 이런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부담없이 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남일선수 덕분에 모르는 팀이나 남일선수가 나오지 않는 경기도 흥미롭게 보게 되는데 이런 멋진글은 얼마나 좋은데요.(물흐린다고 걱정하지 마셨으면....^^;)경기평 잘봤습니다.^^ 2003-09-11
22:46:10

수정 삭제
gogo
61.101.4.***
가끔 나이스관전평방을 뒤져보면서, 축구에 젬병인 시절부터 끄적거린 축구후기를 발견하고 창피해지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흐뭇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관전평의 내용이 어떻든 하나의 자료이고 그걸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관전평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특히 수리님 관전평... 당췌 언제 이런 내용들을 다 메모하시며 보시는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덕분에 공부 많이 하고 있습니다. (꾸벅)... 앞으로도 자주 올려주실거죠? 2003-09-15
14:49:24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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