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대회 12R] "수원 vs 서울" 바람이 불어오는 곳

2006-10-02 01:37:04, Hit : 6311, IP : 220.94.20.***

작성자 : toto
[링크] 자유게시판 [2006/07/26]

1.

1:1 무승부. 상암팀이 빅버드에서 컵대회 우승플랭카드를 드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천제훈의 골이 들어가는 순간 그야말로 멍해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화면 속의 그랑들도 화가 난다거나 경악한다기 보다는 멍한 표정들입니다. 사실 좀 불안했습니다. 선수들은 순간순간 집중력을 잃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고 1:0으로 잠글 수 있을 만큼 그 팀의 공격력이 약한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이런 타이틀이 걸린 경기에서는 오히려 '뭣도 모르는' 젊은 선수가 일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고, 결국 비교적 마크가 헐거웠던 천제훈 선수에게서 골이 터졌습니다. 어정쩡했던 안태은의 슛과 함께 단 두번 있었던 중거리 슛이었는데, 그것이 골망을 가르고 전광판의 숫자가 1로 바뀝니다.


2.

골이 들어가는 순간 이장수 감독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며, 경기 끝나고 상암팀 선수들이 수호신과 함께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제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낍니다. 울산이, 대전이, 설사 안양이 다시 돌아와 빅버드에서 우승한다고 해도 이보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분명 그 팀을 싫어할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자부하지만 네, 논리와 이성은 제게 있어 시작을 부추기긴 하지만 끝까지 함께 가지는 않는 친구들이라서 지금은 미움이란 훨씬 제 심장 가까이 자리 잡은 벗을 데리고 폭주합니다. :-)  거기다 오늘 히칼도 선수의 볼보이 사건은 아, 그야말로 화룡점정입니다. 심지어는 그라운드에서 같은 팀 선수끼리 싸우는 것도 봤지만 볼보이한테 화풀이하는 것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그 볼보이 카메라가 다시 비춰주는 센스까지.


3.

수원은 왼쪽부터 곽희주-싸빅-마토- 조원희의 4백, 그리고 김남일-송종국 위에 이관우 그리고 김대의와 한병용, 원톱으로 서동현을 배치했습니다. 후반들어 서동현을 올리베라로, 곽희주의 부상으로 이정수 교체, 이관우 대신 데니스로 바꾸어주었습니다.

사실 경기내용 자체는 수원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슈팅수나 볼점유율(이건 제가 확인해보진 못했습니다만)이나 전체적인 흐름 자체도 수원이 더 나았습니다. 전반전 있었던 김대의의 슈팅 중에 하나만 들어갔어도 상암이 무너질 수도 있었습니다. 허나 전반 0:0으로 끝나고 이관우의 그야말로 킬패스에 이은 서동현의 헤딩이 골 포스트를 맞추면서, 넣어야 할 때 넣지 못하면 진다라는 불변의 진리가 떠올라 불안했던 것은 저뿐이 아니었을 터.

올리베라의 골 이후 오히려 수원의 잠그기-이건 감독이 의도했던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이관우-데니스의 교체가 수비적이라고 볼 수는 없고 차범근감독으로서도 1:0의 잠그기 보다는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란 모토를 원했던 듯한데 선수들이 자기들 끼리 알아서 잠그더군요- 가 어설프게 이루어지고 조금씩 패스가 어긋나고, 볼처리가 한박자씩 늦다 싶더니 공간을 내어준 순간 골이 났습니다.

수원 선수들 다들 조금씩 지쳐보였고 특히 후반에는 더욱 그랬지만 반걸음만 더 뛰어주었으면 하는 순간이 몇 번이었는지 모릅니다. 거기다 공을 끌다가 수비에게 뺏기는 상황-조원희 선수 제가 센 것만 몇 번인지-은 선수들 스스로가 복기를 좀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공간이 안보여서, 자신이 있어서 치고 나가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조원희 선수 같은 경우는 옆에서 보기에도 어떻게 치고나갈지 보이는데다 무게중심도 높아서 수비가 쉽게 차단하고 역습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몇 번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송을 오른쪽 윙백으로 내리는게 나을거 같습니다. 조원희 선수에게만 공이 가면 플레이가 죽고 경기 스피드가 늦춰집니다. 제가 잘못 본거라면 좋겠는데... 저렇게 열심히 하려는 선수가 공회전 하는 모습 보는 것은 수원팬으로서 괴롭습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선수니까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플레이 하기를.


4.

올리베라는 확실히 골결정력을 갖춘 선수로 보입니다.

보고 있는 제가 2:1,상암볼이다라고 생각하고 눈을 화면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김한윤의 무게중심이 쏠리게 하고 반대로 치면서 이민성 선수를 제끼고 김병지가 막을 수 없는 유일한 코스로 슛. 굳이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동현이라면 넣었을까하는 못된 생각을 하면 네, 넣어야 할 때 넣어주었다고 밖에는 표현 못하겠습니다.

반면 스피드가 있다거나 자신이 만들어 간다는 느낌은 별로 못 받았는데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 겨우 20분 남짓 뛴 선수에게 무슨 평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다 스피드 대신 몸싸움과 결정력으로 승부보는 선수라면 선발로 뛰어야 포스가 충분히 발휘되는 타입일텐데요.

단지 데뷔 첫 경기에서 골을 넣는 운을 지닌 선수라면(울산의 마차도도 아마 데뷔 첫경기에서 골을 넣은 걸로 아는데) 그것만으로도 환영입니다. 닌자모드로 89분 있다가도 운이든 무엇이든 간에 1분 동안 한 골은 반드시 넣어주는 선수가 있다면 어떤 감독이든 기용하고 싶을 겁니다. 아직은 어린 25살, 한국에서 당신의 꿈을 이루기를, 그리고 더불어 수원의 꿈도.


5.

이관우, 이관우, 이관우.

경기 보는 내내 감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저런 플레이를 보다니, 수원이 달라졌다. 그렇구나 우리가 계속 대전에게 이기지 못한 것은 선수탓도 전술탓도 대전이 잘한 것도 아니고 '전부 너때문이야'!!! 제가 지난 긴 세월, 대전과 경기에서 이관우가 공을 가질 때마다, 그가 공을 들고 코너로 걸어갈 때마다, 프리킥을 차기위해 땅을 다질 때마다 덜컹거렸던 가슴을 생각하면 지금 상암서포터들의 마음이 짐작하고도 남습니다만... 허나 앞으로도 오래도록 익숙해져야 할 감정이니 잘 배워두시기를. :-)

선수들과 호흡을 좀 더 맞추고, 부상과 체력문제만 신경쓴다면 당신은 진정한 수원의 별이 될겁니다. 차감독이 조금 더 고민해야 할 것은 이관우를 최대치로 하기 위해 선수본인과 팀의 변화수준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하는 것인데(이것도 풀자면 긴 글이 되겠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6.

누구는 칭찬하고 누구는 아쉽다했지만 사실 이런 경기를 보고나면 다 잘했다고 해주고 싶습니다. 전반전은 압도한 경기였고, 후반들어서도 마지막 15분여를 제외하면 좋은 경기였습니다. 적어도 중원을 거쳐가는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미들을 압도했고 공중볼은 다 지배했습니다.

마토선수는 그야말로 패스루트를 차단하는 영리한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곽희주와 이정수의 맨투맨 마킹도 좋았고 이관우 선수는 킬패스를 여기저기 넣어주고(한병용과 서정현이 대의사마처럼 조금만 더 침투를 해주었더라면...), 송종국 선수도 조금씩 페이스가 올라오는 모습이고. 김주장은 뭐 패스합니다. :-)

사실 오늘을 컵대회가 아니라 후기리그를 위한 리트머스종이로 생각한다면 네,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경기였습니다. 조금만 더 집중하고 조금만 더 결정을 지어준다면 저는 아주 기쁘겠습니다만.  이 경기가 컵대회 끝이 아닌 후기리그 우승을 향한 바람이 불어오는 바로 그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7.

글이 너무 길다고 탓하지는 마십시요. 짧고 핵심을 담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능력이 안되니. ^^; 뭐 만연체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거기 돌 던지려는 분들 잠깐 내려 놓으시고...)

적어도 저는 축구에 대해 글을 쓰는 동안은 진심을 담아 쓰려고 합니다. 제가 느낀 환희와 절망, 기대와 아쉬움에 대해 잘 정제해서 쉽게 쓰는 것은 작가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날 것 그대로를 내보이는 것도 (능력 부족 탓도 있지만) 제 진심을 내보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저는 작가따위 보다는 함께 호흡하는 팬으로 글을 쓰는 것이니 글이 쓸데 없이 길어지더라도 조금만 이해해주시기를. :-)


8.

마지막으로 오늘 박주영선수의 헛발질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아마 비 때문에 미끄러워서 그랬던 거 같은데...그런거 싹 지워버리고 헛발질했다는 것만 기억하겠습니다. @_@







전체목록  |  축구자료 (146)  |  관전평 (164)

 
250 [관전평]
  [아시안컵 예선] 대한민국 vs 대만, shall we dance? 
 toto
3720 2006-10-02
[관전평]
  [컵대회 12R] "수원 vs 서울" 바람이 불어오는 곳 
 toto
6311 2006-10-02
248 [관전평]
  [대한민국 vs 스위스] 다음에는 웃을수 있었으면 합니다   1
 석이
3668 2006-10-02
247 [관전평]
  [대한민국 vs 프랑스] 아트사커 프랑스는 강했다.그러나 우린 이겼다~!   2
 석이
3848 2006-10-02
246 [관전평]
  [대한민국 vs 토고] 첫 경기 후 몇몇 선수들에 대한 찬양...   2
 석이
3573 2006-10-02
245 [축구자료]
  [사진] "2003 ~ 2006" 김남일 선수의 플레이 모습   27
 석이
3667 2006-09-18
244 [축구자료]
  [사진] 8년만에 찾아온 기회, 슈퍼세이브. <박.호.진.>   2
 석이
3577 2006-09-18
243 [축구자료]
  [2002 대한민국 vs 프랑스 평가전] 백만년 뒷북... ㅎㅎ   13
 석이
3547 2006-09-18
242 [축구자료]
  [대만전] 사진으로 보는 김남일 선수의 활약상...   1
 석이
3387 2006-09-18
241 [축구자료]
  [특집] 축구공의 모든것~!!!   9
 석이
8935 2006-09-06
240 [축구자료]
  No.3 당신은 바로 수원 블루윙즈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4
 석이
3580 2006-08-06
239 [축구자료]
   Forever BUCHEON... 그들이 돌아 올 날을 기다리며   3
 석이
7227 2006-07-30

[1][2][3][4][5] 6 [7][8][9][10]..[26]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