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vs 가나] 가지 않은 길.

2006-10-20 00:55:29, Hit : 3845, IP : 220.94.20.***

작성자 : toto
[링그] 자유게시판 [2006/10/09]

리뷰나 관전평 아닙니다. '잡담'임을 기억해 두시길.


0.

대한민국: 가나의 친선전이 지난 8일 상암에서 있었습니다.

베스트 11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나에 비해 한국은 가감없는 2진입니다. 선발 명단에서 확실한 베스트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김동진과 이호 정도로 김영광조차 김용대와 아직도 경쟁 중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군 면제라는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걸린 아시안 게임 멤버(현실적으로 한국 축구선수들이 군면제를 받을 수 있는 세 가지-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게임- 중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시안게임입니다)들을 운용할만한 것은 시리아전과 이란 원정 정도 뿐인 상황에, 강호 가나를 홈에서 친선으로 부담없이 상대할 수 있는 실리가 지난 평가전의 3:1패배의 설욕이라는 명분을 압도했습니다.


1.

정조국
염기훈 이종민

오장은
백지훈 이호

박주성 김진규 김동진 차두리

김영광(G.K.)

가나는 좌로부터 사르페이/멘사/일리아수/모하메드, 킹스턴/에시앙/아피아/문타리, 기안/아고고의 442 포메이션입니다.

경기는 가나의 완승입니다. 3:1이라는 스코어는 월드컵전의 평가전과 같습니다만, 평가전 당시 한국선수들의 체력이 바닥이었고 지금은 홈경기인 점, 김영광의 선방과 가나가 골과 다름 없는 몇 차례의 기회를 날린 장면, 그리고 무엇보다 경기 내용자체를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아직 베스트멤버과 어제의 선발 사이에는 확실한 레벨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2.

미들에서의 완패가 결정적입니다. 사실 어제 같은 경기에서는 베스트와 워스트를 말한다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누구랄 것 없이 좋은 모습이 아니였습니다만 백지훈-이호-오장은의 미들에 대해서는 브라질도 압도하는 가나를 상대로 나름대로 분발했다는 것 정도가 해줄 수 있는 칭찬의 전부입니다. 433이 기본이지만 공격시에는 오장은이 쉐도우 스트라이커처럼 올라가고 양쪽 윙이 내려오는 4411, 수비시에는 451로 전환하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베어벡 감독이 경기전 가나전 전략으로 언급한 부분-가나 4백의 뒷공간을 노리겠다-이 역으로 한국에 맞아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미들싸움이 일방적인 경기에서 가나 4백은 오버래핑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반면 한국의 4백은 오버래핑하지 않는데도 계속 돌파와 크로스를 허용합니다.


3.

박주성은 a매치로 따지면 2경기(한일전에서 2분인가 교체로 뛰었으니 실질적인 데뷔전입니다만) 출장이지만, 청대시절 확고한 주전으로 국제경기 경험이 그 나이에서는 모자란 편이 아닙니다. 거기다 소속팀에서 윙백으로 뛰고 있다지만 청대시절 4백의 왼쪽 풀백을 뛰었으니 낯선 포지션도 아니고, 전반전 보여준 몇 차례의 몸을 날리는 선방으로 미루어 처음부터 그렇게 얼어있지는 않았는데 몇 번 돌파당하고 나더니 공이 오면 우왕좌왕하며 위치선정이 어설퍼집니다.(장학영 선수의 데뷔전이 꼭 이랬습니다만 ^^;)

결국 킹스턴에게 속절없이 돌파당하며 첫번째 실점의 빌미가 된 크로스를 허용하는데, 쉽게 걷어낼 것이라고 안심한 순간 트래핑 미스와 중심이동 실수가 겹치며 생긴 공간으로 올라간 크로스를 기안 선수가 김진규를 제압하며 헤딩, 첫 골로 연결했는데 이건 확실히 수비라인의 실책입니다.

박주성 선수가 계속 중앙으로 치우쳐서 플레이 한 것은 수세시 미들이 내려와 주지 못하면서 비어버린 중앙을 커버하기 위해서인 것도 있겠지만, 클럽에서의 습관에 더하여 몇 번 붙어서 수비하다 돌파를 허용하며 차리리 크로스를 주더라도 한번에 뚫리지는 않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식으로 수비를 하려면 센터백이 확실하게 공중볼을 장악해 주고 이호나 염기훈 선수가 수비를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만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으며 왼쪽라인이 초토화되는 결과만 가져 왔습니다.

오른쪽의 차두리는 장점뿐만 아니라 한계점도 분명하게 드러난 경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경기만으로 이렇게 명확히 자신을 보여주니 베어벡감독으로서는 일단 테스트한 보람이 있었겠군요. 4백 중에서 피x컬과 스피드가 월등하기 때문에 약간 스타트가 늦어도 바로 따라 잡을 뿐더러 김동현과 함께 가나 선수과의 몸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드문 장면을 보여주었고... 생각보다는 안정적입니다.
이게 기준을 어떻게 세우는가에 따라, 그리고 호불호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라 조심스럽습니다만 윙백으로서 큰 무리가 없어 보이는 플레이였고 오히려 중앙을 커버하려다 위험스런 장면에 끼어들어갔던 적이 더 많습니다. 다만 차두리가 국대레벨의 윙백으로 뛸만한가에 대한 의문에는 아직 부정적입니다.

일단 몇 차례 보여준 실수나 겉도는 플레이는 윙백으로 전향한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다른 선수들과 손발을 맞출 기회가 없었기때문이라 넘길 수 있지만, 문제는 어제 가나의 only 오른쪽 공략은 차두리가 잘 막아준 것이 반, 박주성의 왼쪽 공략이 쉬웠던 탓이 반이라는 점입니다. 박주성이 너무 쉽게 무너져서 차두리쪽은 올라갈 필요성 자체가 별로 없었으니까요. 뭐 이건 결과론적인 것이니 조심스럽게 그럴수도 하는 정도로 던지는 말이긴 합니다만. :-)

이 선수가 윙백으로서 가진 장점이라면 역시 수비력 보다는 가공할만한 스피드를 이용한 공격적인 면일텐데 어제의 경기는 이런 것이 드러날만한 상황을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지금의 차두리는 약팀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나갈 때, 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 방을 노리고 투입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 주전으로 쓰기에는 수비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대표팀 레벨에서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수비력 좋은 선수와 수비수의 차이를 그라운드에서 실감하고 있을 차두리의 새로운 시작을 그리고 송종국, 조원희, 오범석과의 맹렬한 경쟁을 지켜봅니다.



4.

김영광의 선방 하나와 가나 공격진의 마무리 부족으로 몇 차례 위기를 넘기며 전반전을 0:0으로 마무리하면서 제가 예상한 교체는 염기훈이나 이종민을 빼고 김동현의 투입, 그리고 김동진이나 김진규<-> 김영철이었습니다.

베어벡으로서는 승패보다는 내용이 중요한 경기이지만 이것이 결과는 상관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제의 경기는 단적으로 말하면 AG 대비용, 즉 경기의 결과 자체도 과정에 포함되는 셈이라 무력하게 대패하게 된다면 어린 선수들의 사기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당구에서 공을 넣는 것도 좋지만 설사 못 넣더라도 적어도 다음 큐에 치기 편하게 두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긴 호흡에서 보면 중요합니다. 결국은 어떤 패배에서든 배우는 것은 있지만 득실 계산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어제 선발명단에 대해서는 그다지 불만이 없습니다. 어차피 아시안 게임은 저 멤버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야 하는 것이고 언제까지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이 따라다닐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반 바스텐이 네달란드 국대를 전면개편할 때도 코쿠는 중용되었음을 생각하면 수비와 미들에서 모두 의지가 될만한 선수가 없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FW와는 달라서 수비와 미들 중 적어도 어느 한 쪽에서는 1+1을 3으로 만들고 젊은 선수들의 재능을 적절하게 뽑아내는 흐름을 만드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수요소입니다. 뭐 베어벡으로서는 선수선발이나 교체에 있어서 선택의 폭이 아주 좁았기 때문에 전술운운하면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만.


5.

정조국의 플레이를 보며 김동현이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마 감독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선수 테스트 차원인지, 혹은 오장은의 부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후반 시작과 함께 김동현이 투입되었는데, 이 선수 원래 피지컬은 좋았지만 해외리그에서 뛰며 몸싸움이 더 좋아졌습니다. 반면에 정조국 선수는 키에 비해 포스트 플레이가 장점인 선수는 아닙니다. 오히려 활동량도 괜찮고 PA안에서는 결정지을 수 있는 테크닉을 갖춘 쪽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쉐브첸코와 드록바의 조합정도입니까?

물론 이동국이 돌아온다면 모든 것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국대에서 조재진의 위치는 애매합니다. 포스트 플레이만을 원한다면 차라리 김동현이 낫습니다. 아마 조재진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 프랑스전을 생각하더라도 김동현이 그보다 헌신적이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수비수에게 위협적인 면에서는 단연 정조국입니다. 정조국이 포스트 플레이에는 능하지 않지만 일단 공을 잡으면 최전방에서도 어느 정도 키핑할 능력이 되고 침투하는 선수에게 배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가나 감독의 19번이 가장 위협적이었다는 말은 어찌 생각하면 뼈아픈 말이지만 일견 사실이기도 합니다. 첫 골 장면에서도 가장 칭찬해야 하는 것은 염기훈이겠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정조국의 플레이도 좋았고 전반전 있었던 가장 좋은 기회인 오장은의 슛 이전에도 정조국의 포스트 플레이가 있었습니다.


6.

미들에서 전반전 가장 돋보였던 것은 오장은입니다만 이게 오장은이 미들로서 잘해주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전반전의 오장은은 공미가 아니라 쉐도우 스트라이커처럼 움직였습니다. 욕은 많이 먹지만 사실 어제 미들에서 그래도 버텨주었던 것은 차라리 이호쪽이고 백지훈 선수는 그렇게 좋은 모습이었다고는 하기 힘듭니다만, 잘라 말하자면 다 비슷합니다. 오십보 백보, 상암이나 sk나, 박근혜나 이명박이나. :-)

수비시에는 적극적으로 붙어주고 공격할 때는 주고 빠지는 식으로 만들어 가려 했고. 굳이 따지자면 막강 가나를 상대로 하는데 까지는 했다는 게 맞습니다. 단지 개인기량이 확실히 차이가 있고 볼키핑이 좋지 않아서 힘들게 커트한 뒤에서 쉽게 뺏기는 일이 반복되고, 능구렁이 가나 미들에 비하면 단순한 플레이가 많았습니다. 일단 1:1에서 밀리니 두명이 상대하며 반대편 공간을 내주고 그렇다고 윙들이 커버를 잘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두명이 붙어도 간단히 제끼고 이어지는 데다, 겨우 인터셉트하면 다음에 받을 사람을 에워싸서 소위 말하는 '받는 사람을 죽이는 패스'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집니다.

가장 문제는 수비에서 공격,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미들에서 내려와 패스를 받아주는 사람도 없고 막혔을 때 공을 돌리거나 롱패스를 넣어주거나 속공을 하는 등의 경기운영이 안됩니다. 이건 이호-백지훈 조합이 가지는 한계이기도 한데 백지훈 선수는 문자적인 의미에서 앵커형입니다. 수원에서 백지훈이 가장 잘하는 것은 김남일이 받아서 백지훈에게 주면 이관우와 주고 받으며 전진할 때입니다. 백지훈은 간단히 말해 패스하는 센스가 있습니다. 이게 창의적이라든가 플레이메이커라는 의미가 아니라 패스 타이밍을 알고, 편하게 줄줄 알고, 자신이 주고 나면 받기 위해 움직이는게 자연스러운 선수라는 말입니다.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위협적인, 가끔은 박지성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종종 연출하는 감각이 있지만 혼자서 뭔가를 해결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국대에서 주전으로 뛰기는 무리다라고 결론을 내리려는 후반 2:1 상황에서 백지훈이 에시앙의 뒷목을 의도적으로(!) 잡고 늘어지며 옐로 카드를 받습니다. 결연한 눈빛이랄까, 꽃미남이란 말 뒤에 숨은 투x랄까 이런 것이 이 선수를 속단할 수 없게 합니다. 아직 이 선수의 팬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앞으로도 함부로 돌아서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


7.

전반에 이종민 선수가 올려준 몇 번의 크로스도 좋았지만 염기훈 선수쪽이 더 경쟁력 있어 보입니다. 플레이 스타일의 차이도 있지만 염기훈 선수 활동량이 좋더군요. 전북의 AFC에서의 모습을 생각하면 조금 불만입니다만 공이 오지 않아도 많이 움직여주었고 첫 골 장면에서도 수비를 제치는 장면이나 반박자 빠른 슈팅, 여하튼 자신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해준다는 점에서 인상 깊습니다.


8.

친선전임에도 불구하고 풀타임 열심히 뛰어준 가나 선수들을 보며 베스트 멤버들의 진검승부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필드위의 선수들로서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겁니다. 자신이 느꼈던 것이 무력감이거나 분노 혹은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이든 상관 없습니다. 선배들이 이란에게 6:2로, 네덜란드에 체코에 5:0으로 깨지며 걸어간 그 긴 여정이 이제 이 선수들에게는 시작되었군요. 오늘은 아니지만 내일의 베스트들에게는 길고 괴롭고 응원보다는 핀잔이 많은 길이고,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사람들이 적게 가는 길을 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저 이 선수들의 건투를 빕니다.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1876-1963)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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