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리그 1R] 상암 : 수원 -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10-02 01:54:30, Hit : 7089, IP : 220.94.20.***

작성자 : toto
[링크] 자유게시판 [2006/08/24]


1.

후기리그 개막전, 상암:수원의 경기가 23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4만이 넘는 관중이 모인 가운데 열렸습니다. 내용만 본다면 명승부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경기 외적인 면에서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경기입니다.

많지 않은 후기리그 경기 수를 감안하면, 우승을 위해서는 패배는 물론이고 무승부 하나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두 팀의 팽팽한 전력이나 어웨이임을 생각하면 무승부도 그럭저럭입니다만, 개막전부터 무승부라니.
후기리그 우승을 하려면 성남을 반드시(!) 잡아야할 뿐더러 패배의 마지노선이 더 낮아져야 하는 부담을 안고 수원의 후기리그는 시작됩니다.


2.

수원의 포메이션은

올리베라 실바

이관우
문민귀 김남일 송종국 조원희

곽희주 이싸빅 마토

의 3412로 시작했습니다. 차범근 감독이 이전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준 4백을 버리고 3백을 선택한 것을, (인터뷰에 따르면) 상대가 2톱이고 히칼도의 2선 침투를 막기 위해 수비 숫자를 늘린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만 경기 내용을 보면 그리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2톱에는 3백, 1톱에는 4백이란 것은 월드컵 이후 어지간한 축구팬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지만 포메이션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상식이 되었습니다. 3백이 2톱을 막는 기본은 맨투맨으로 공격수에게 붙어주고 나머지 수비수 한 명은 수비라인을 지휘하며 협력수비, 2선에서 침투하는 선수는 미들에서 지연시키며 3선과 함께 수비해주는 것입니다만 상암의 3백이 수원의 올리베라와 실바를 정석대로 마크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수원의 수비진은 번번이 두두를 놓치면서 아찔한 순간을 여러 번 보여주었습니다.

이전부터 수원은 3백과 4백을 혼용했었고 특히 지난 시즌 후기리그에서는 3백을 주로 사용했던 터라 선수들도 3백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수비라인이 불안해진 것은 마토와 이싸빅이 초반에 실수 하나씩을 하고 난 뒤 부터입니다. 수비수의 실수야 그야말로 병가지상사, 문제는 이후에 어떻게 잊어버리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인가입니다만 -그랑은 다들 알고 있는 - 두 선수 다 실수하고 나면 욱하며 투지에 불타는 경향이 있어서, 슛팅 각도를 줄이거나 사이드 쪽으로 몰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을 오버하여 태클하다 뚫린다든가, 크로스를 허용하지 않으려 너무 붙다가 한 번에 제껴지는 등의 침착하지 못한 플레이가 계속 되며 위험한 순간이 속출합니다.

거기다 마토와 이싸빅의 느린 스피드는 두두같은 타입에 약해서, 김은중과 히칼도가 중앙으로 들어오고 두두가 옆으로 벌리면서 침투하면 번번히 따라가지 못해 파울로 끊는 것이 고작이었고, 사실 실점 장면도 이런 파울에서 시작된 코너킥이 시발점입니다.


3.

3선이 이렇게 흔들린다면 미들에서 어느정도 커버해주어야 하는데, 사실 이번 경기 수원의 미들은 상암에 밀렸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지배했다거나 히칼도를 무력화시켰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이렇게 된 것은 일단 김남일-송종국의 중앙미들 조합이 그 한계를 보여준 것 하나, 그리고 상암의 이을용 포스가 둘, 마지막으로 문민귀와 조원희의 미스입니다.

송종국의 중미 자격시비는 이전부터 끊임없이 지적되어 온 것이고 저도 몇 번인가 언급한 터라 길게 말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송이 센스 있는 선수인 것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수원이라는 우승을 목표로하는 팀의 중앙미들로 서는 것은 반짝이는 감각 이상이 필요한 것이고, 김남일이 나가고 나서 보여준 플레이를 생각하면 윙백으로 세우는 것x 본인이나 팀에게 더 나을 겁니다. 캐릭의 영입이 긱스를 사이드로 돌릴 수 있게 했듯이, 백지훈 영입이 송을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왼쪽의 문민귀와 오른쪽의 조원희는 사이드에서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플레이를 보여주었습니다. 3백위의 윙백으로는 이정수보다 문민귀가 익숙한터라 선발 출전한 것으로 보이는데, 4백보다 3백의 윙백이 공격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3412에서 자신이 올라간 뒤 역습을 당한다면 그 때는 미들에서도 밀리기 때문에 사이드가 뚫리면 골키퍼와 바로 1:1찬스가 나는 것이 더 쉽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자신의 뒤에 있는 수비수가 스피드가 느리다는 걸 감안해 수비에 좀 더 신경썼더라면 마토선수가 그렇게까지 밀리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거기다 왼발 크로스도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아서, 뭔가 열심히 하려는 것은 알겠는데 팀에 녹아들지는 못한 모습을 보여줍니다.아직 이적 후 2게임째라 뭐라 평가내리기에는 너무 이릅니다만,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은 네, 선수에게나 팬에게나 너무 잔인한 일입니다. :-)


5.

전반전이 끝나고 실바->김대의, 후반 20분 경 올리베라->백지훈의 교체는 감독이 나름대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피지컬만 볼때는 전형적인 빅앤스몰 조합으로 보였던 이 두 용병은, 전반이 끝날 때쯤에는 스몰포워드가 중앙에 박혀서 공을 기다리고, 빅포워드는 헤딩경합에 밀리면서(!) 느릿느릿 돌아다니며 공을 받아 올라가는 당황스런 조합으로 판명됩니다.

후반시작과 함께 김대의 투입은 모든 사람이 예상했었고(더불어 데니스가 얼마나 그리운지도 느끼며!) 상성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실바를 교체해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올리베라까지 out한다는 것은 야심차게 영입한-그러나 지독하게 호흡이 맞지 않는- 2톱에 대한 감독의 전술적 미스를 시인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라 사실 살짝 놀랐습니다.

후반 차붐이 던진 승부수 하나는 앞서 말한 실바->김대의의 교체와 더불어 이을용과 한태유의 협공에 밀려 사이드에서만 돌며 문민귀나 조원희와 겹치던 이관우를 아예 사이드로 올려버리는 것입니다. 즉 이관우-올리베라-김대의라는 343포메이션을 가동하면서 이관우는 날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아니면 슬램덩크를 빌리자면 '전반은 버린 것인가....?' :-)

그리고 수비라인에서 싸빅을 중앙에 두고 곽희주와 마토가 마크맨에 따라 좌우를 바꿔 가며 두두는 스피드가 좋은 곽희주가 전담하는 식으로 정비하기 시작한 것이 두 번째입니다. 차범근 감독의 연임에 대해 미심쩍어하는 저이지만, 이 두 가지 변화를 주는 것을 보고 아무리 뭐라해도 프로는 프로, 저보다 1억 5천만배쯤 낫다고 좌절했습니다.

네, 이건 차감독의 적절한 판단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후 수원은 확실히 전반보다 나은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간격을 유지하던 상암의 2선과 3선에 무수한 잽을 퍼붓습니다.

될듯 말듯하다 조원희가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가 순간 올라와있던 이관우의 발끝에 걸리며 시저스발리킥이 상암의 골문에 동점골을 꽂아 넣었고, 이후 이관우는 그랑 앞에서 경례를 올리는 세레모니를 하며 N석을 뒤집어 놓습니다. 이 선수 인터넷 돌아다니며 연구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야말로 서포터들을 감동시키는 멋진 골에 어울리는 열정적인 세레모니였습니다. :-)

골이 들어가자 차범근 감독은 올리베라->백지훈의 교체카드를 내놓으며 이관우-김대의 2톱을 쓰는 352를 시도하는 듯 보였습니다만 수원의 잠재적 불안요소 하나가 수면위로 떠오르며 포메이션 따위는 아무 소용없게 됩니다. 히칼도와 김남일이 후반 초반 말싸움 끝에 받은 옐로우 카드 한 장은, 후반 말미에 안태은과 이관우선수의 충돌로 이관우가 쓰러지고 이후 안태은이 공을 인플레이 시키다가 조원희에게 맞으면서 열 받은 김남일이 안태은을 밀치고....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된 끝에 나온 옐로우 카드 하나와 더해져 김남일이 퇴장당합니다.


6.

이후 남은 경기는 뭐 그다지 할 말이 없습니다. 상암이 점한 수적 우위는 타올라버린 수원 선수들에게 상쇄되었지만, 수원으로서도 사실 수비하는게 우선이고 마지막 문민귀의 교체는 시간벌기라는 의미도 있었을 겁니다.


7.

축구 사이트마다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심지어는 국대 주장자격론까지 불거지는 걸 보니... 어색합니다.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라도 있을 수 있다고 여기는 해프닝 정도로만 생각했던 저로서는 이런 마녀사냥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안태은과 이관우, 김남일, 조원희가 얽히면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만, 법과 규칙은 냉정해서 물리적 충돌이 시작된 김남일 선수에게 옐로우를 주고 퇴장시킬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물론 조금 더 참았다면,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것을 가지고 너 때문에 졌다라고 하거나 주장답지 못한 플레이라고 하는 것은 명백한 과민반응입니다.

김남일이 고의로 상대 발목을 노리고 태클이 들어갔다거나 에릭칸토나처럼 관중석에 대고 날라차기를 한 것도, 반니스텔루이처럼 상대편 약을 올린 것도, 뉴캐슬의 보이어와 다이어처럼 같은 편끼리 싸운 것도 아닙니다. 그가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것은 부상당한 팀 동료에 대한 애정으로 상대선수와 싸우며 판정에 계속 항의한 것이고, 이런 감정조절 실패와 심판에 대한 불복종은 분명히 관용의 선을 넘어선 것으로 적절한 댓가(퇴장)를 치르며 매듭지어졌습니다.

그걸 가지고 주장 자질이라느니 카리스마 남용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말 외에는 딱히 적합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덧붙여 주장자질이 언제부터 그라운드에서 냉정하게 선수들 말리는 것으로 한정지어졌는지. 홍명보 이후 그런 주장 이미지가 굳어진 듯한데, 사실 주장의 역할을 경기 중이 아닐 때 더욱 발휘되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로이킨이나 에펜베르크, 칠라베르트는 어떻게 주장을 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변호는 굳이 하고 싶지 않고 사실 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볼 뿐이라, 아마 김남일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던 사람은 제가 뭐라고 하든 바뀌지 않을 것이고, 저 또한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바뀌지 않을 겁니다. :-)

김주장의 실수는 굳이 비교하자면 시메오네의 도발에 넘어가 퇴장당한 베컴이나, 0203시즌 CL 4강 레알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맥마나만에게 태클을 가해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뛰지 못하게 되자 엎드려 절규하던- 결국 AC 밀란이 우승컵을 가져가는 장면을 볼 수 밖에 없었던 네드베드, 또는 멕시코전에 골을 넣고는 흥분하여 어이없이 백태클로 퇴장당한 하석주 정도가 적당할 듯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선수들을 주장답지 못했다거나 선수로서 문제가 있었다고는 전혀 기억하지 않습니다. 단지 제가 또는 당신이 종종 그러하듯 실수로 일어난 어이없는 해프닝, '만약에 그러지 않았다면'이라고 시작되는 이야기거리,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라고 웃을 수 있는 일화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합니다. 이렇듯 이 사건 또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일로 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8.

누군가가 말하길 사랑은 그래서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했습니다. 소녀취향 문고판에 나오는 구절 같은 말입니다만 이번에는 진지하게 동의하고 있습니다. 일련의 실수와 쏟아지는 비난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김남일을 지지합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틀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닙니다. 그래서. 실수와 비난 때문에, 그래서 저는 지지합니다.


뱀발) 이 경기에서 최대의 화제거리는 김남일의 퇴장이 아니라 김치곤 선수의 부상이 아닐까 했는데 완전히 틀렸습니다. 어디서도 소식 한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아파하는 모양이나 발목으로 봐서는 골절이 아닐까 하는데 빠른 쾌유를 빕니다.


석이
220.94.20.***
이때만 해도 후기리그 이넘들이 먹는거 아니냐 하며 걱정했는데 약발 떨어진 두두, 자기 자리를 못잡는 이을용, 고만고만한 공격수등.... 니들은 그냥 컵대회 먹고 떨어져라. 2006-10-04
00:03:37

수정 삭제
파즈
61.109.102.***
현수막문제도 있고, 남일선수의 퇴장문제도 있어서 (퇴장이라기 보다는 심판의 어이없는 시간끌기) 경기를 보기는 했나 싶은 경기였는데... 토토님 리뷰 읽다보니까 하나씩 생각나네요 ㅎㅎ 토토님 글 보면서 항상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에게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주세요~ 2006-10-04
00:52:33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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