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로(soccer.com)에서 진성언님의 글을 퍼온 것입니다.
4-4-2로 본 현대축구 (2) : 4-4-2의 탄생과 3-5-2
작성자 : 진성언
4-4-2 포메이션의 탄생
상대골문을 열어제치기 위한 전술적인 연구가 집중되면서 수비전술에 대한 고려 역시 동반 발전했다. '58 브라질 월드컵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대축구의 흐름을 주요 팀들의 포메이션을 통해 살펴보면 현대축구가 공격 중심의 축구에서 점차 수비에 주안을 둔 쪽으로 변화되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이후 포메이션의 발전방향은 '과대방어'를 지향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왔던 것이다.
실례로 '54 스위스 월드컵 당시 5.38골에 달했던 경기당 득점률은 다음 대회인 '58년 대회에서 3.6골로 줄어들었고 이후 2002 한일 월드컵까지 다시 3점대로 올라서지 않을 정도로 완만한 편차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세계 축구의 평준화 추세가 가속됨과 더불어 월드컵에 참가하는 팀들의 수준이 상향조정되면서 공격 일변도의 축구에 앞서 각팀들은 미드필드와 수비를 강화함으로써 공, 수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안정적인 경기력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58 스웨덴 월드컵에서의 브라질은 W-M 시스템을 변형한 4-2-4의 포메이션으로 수비의 안정을 꾀했고, '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이를 개량한 4-3-3 포메이션을 앞세워 강력한 미드필드를 구축, 다시금 정상등극에 성공했다. 이런 브라질의 변화에 영향 받은 잉글랜드는 자국에서 열린 '66 월드컵을 통해 4-4-2의 포메이션을 선보였다. 4-4-2는 종래의 축구와 달리 많은 수의 포워드를 두지 않고 수비의 안정과 미드필드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경기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포메이션이었다. 잉글랜드는 4-4-2를 기초로 대회 6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3실점만을 허용하며 최초로 월드컵을 품에 안았다.
중원에서의 경쟁을 중시하는 잉글랜드 식 4-4-2는 당시만 해도 혁명과 같은 변화였고, 이처럼 배후 수비라인 강화와 미드필드 조직의 정밀화에 주안을 둔 전술적 흐름은 이후 1-4-3-2을 바탕으로 한 빗장수비 카테나치오(Catenaccio), 4-3-3에 근거한 네덜란드식 토탈사커(Total Football) 등의 출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카테나치오, 토탈사커 등은 포메이션으로 분류되어지기보다는 내용상의 전술적 개념으로써 이해되어야 할 것들이었다. 이후 80년대 독일을 필두로 한 3-5-2 압박축구가 현대축구를 대표하는 또하나의 중심축으로 득세하면서 4-4-2와 3-5-2는 포메이션의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3-5-2 vs 4-4-2
일반적으로 3-5-2를 파워축구, 4-4-2를 기술축구를 대변하는 모체 정도로 인식한다. 게다가 각기 대인방어와 지역방어로 대변되는 고유한 특징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설령 이들 각각의 전법이 그러한 파워축구와 대인방어, 기술축구와 지역방어와 보다 민감한 연관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마치 그러한 짝짓기에 어떠한 필연성이 내재한다고 확신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90년대 들어 유행처럼 번진 4-4-2가 일견 3-5-2를 극복하고 개량한 신모델인 것으로 비춰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까닭에 양자는 외양은 다를지언정 개념상으로는 유사한 일면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4-4-2가 이미 3-5-2의 출현 이전에 존재해왔고 현재도 이 두 포메이션 모두가 고루 여러 팀들에 의해 애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표면적인 차이로 양자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독일하면 3-5-2 전법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3-5-2 압박축구는 어느새 독일축구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애당초 3-5-2는 비슷한 시기 아르헨티나와 독일에 의해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된 전법이었다. 공교롭게도 '86 멕시코 월드컵 결승에서 맞붙은 비야르도(Carlos Billardo)의 아르헨티나와 베켄바우어(Franz Beckenbauer)의 서독 모두가 3-5-2 전법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이들은 다음 대회였던 '90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서도 다시 만나 같은 모습을 재현했고 공평하게 한차례씩 월드컵을 나누어 가졌다.
이 가운데 3-5-2의 전형(典型)을 제시했다 말할 수 있는 독일식 3-5-2는 투톱에 의한 공격전술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자연스레 생겨났다. 3-5-2 포메이션의 특징은 3명의 수비라인을 두고 그 중 2명의 수비수로 하여금 침투하는 상대 투톱을 전담마크하고, 배후에 1명의 스위퍼를 두어 최종적인 커버링의 임무를 부여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또한 두텁게 늘어선 5명의 미드필더를 포진시켜 중앙 미드필더들로 하여금 철저한 압박을 구사하게끔 했고 측면 미드필더들에겐 사이드백의 임무를 부여, 필요시 공격과 수비 모두를 책임지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3-5-2는 미드필드로부터의 강한 압박을 키워드로 힘과 기동력을 앞세워 경기의 우위를 점하는 것을 원개념(元槪念)으로 삼는 파워 축구를 대변하는 말과 같았다.
반면 4-4-2 포메이션이 전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게된 계기가 되었던 것은 '94 미국 월드컵이었다. 물론 이전 80년대 후반 아리고 사키(Arrigo Sacchi)가 지휘했던 AC 밀란을 위시해 이탈리아의 주요 클럽들이 이를 채용하기 시작했고 유로 92를 통해 이미 새로운 조류로 자리잡긴 했지만 말이다. 당시 4-4-2로 무장한 사키의 이탈리아와 결승에서 맞붙은 브라질은 전형적인 4-4-2를 바탕으로 통산 4번째 월드컵을 거머쥐었다. 대회를 지켜본 전세계 축구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브라질 우승의 원인을 호마리우, 베베토를 앞세운 화려한 공격력에 앞서 7경기에서 4골만을 내준 튼실한 4백(조르징요-아우다이르-마르시우 산토스-브랑코 혹은 레오나르두) 수비라인에서 찾았다. 브라질은 '70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 때와 유사한 4-4-2 형태의 시스템을 전개했지만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중앙에 배치하는 다소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 같은 흐름은 이전 월드컵인 '90 이탈리아 대회를 우승한 독일식 압박축구에 영향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흔히들 4-4-2 포메이션이 그 자체로 공격적인 전법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4-4-2 전형이 공격 일변도의 축구를 벗어나 수비를 강화하는 흐름이 지배적인 대세를 이루었던 60년대 이후에 창안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속단이 매우 설득력이 부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등장 당시의 4-4-2는 기저에 수세적인 마인드를 짙게 내포하고 있었다. 이같은 단서는 위의 예에서도 쉽게 포착된다. 4-4-2와 3-5-2. 두 포메이션은 현대축구를 대변하는 주도적인 전술적 모체(母體)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어느 한 포메이션을 두고 지레 '공격적이다, 수세적이다'라 단언한다는 자체는 말 그대로 무의미한 것이다. 표본으로서의 전형과 그라운드에서 해석되는 전형 사이에 실질적 차이가 존재함은 물론이고 각각의 팀들이 보유한 인적자원과 그 구현 방식, 쓰임새 등에 따라 현실적인 모습은 너무도 확연히 다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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