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유망주](20) 김영광, “부상으로 실려나가는 한이 있어도"

2003-08-27 20:06:48, Hit : 3186, IP : 152.149.54.***

작성자 : 위너CJ

U-20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는 김영광(20). 어느덧 U-20 대표팀뿐만 아니라 올림픽대표팀의 주전 골키퍼까지 차지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84cm, 80kg의 신체조건을 가진 김영광은 사실 골키퍼로서 좋은 체격조건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다. 요즘 젊은 골키퍼들의 상당수가 180cm 후반대이거나 190cm를 넘어서는 상황이기 때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광이 가장 촉망받는 골키퍼로 손꼽히는 이유는 순발력이 뛰어나며 정신적으로 매우 강인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신적인 강인함은 그를 지도했던 GK코치들이 한결같이 칭찬하는 부분이다.

유소년대표팀 시절 그를 지도한 바 있는 박영수 국가대표팀 GK코치는 “영광이는 굉장히 욕심이 많은 선수이고, 하려고 하는 의지와 승부욕이 그 누구보다 강하다. 무서울 정도이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하나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하나를 더 해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수인지라 기대가 크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성수 올림픽대표팀 GK코치 역시 “순발력과 파이팅이 좋다. 적극적인 성격과 사고를 가지고 있어 발전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김영광을 평가했으며, 김풍주 U-20 대표팀 GK코치 역시 “지난해에 비해 한결 듬직해졌다. 이제는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한 것 같다”며 제자의 급성장에 흐뭇해했다.

볼보이에서 골키퍼로

김영광이 처음 축구를 시작한 시기는 전남 해남동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정식 축구부는 아니었고, 클럽식으로 가볍게 축구를 맛보는 정도였다.

“클럽식으로 축구를 하다가 순천으로 이사가는 바람에 잠시 축구를 그만뒀었죠. 그런데 축구를 하다가 그만두니까 정말 허전하더라구요.(웃음) 다시 하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랐어요. 더군다나 전학갔던 순천중앙 초등학교가 축구로 유명한 학교였거든요.”

순천중앙 초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간 김영광은 좋은 체격조건으로 인해 스트라이커로 뛰게 되었다. 그러나 골키퍼와는 달리 스트라이커로서의 재능은 인정받지 못하며 점차 포지션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체격조건 보시더니 스트라이커로 세우셨는데, 조금 지나자 윙으로, 다시 미드필더로, 중앙수비수로...서서히 아래로 내려갔죠.(웃음) 그러다가 최종적으로는 볼보이가 내 포지션이 됐어요.(웃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영광은 골키퍼 인생에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을 쌓게 되었다. 현재 K리그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종호 씨와의 만남이 바로 그것. 당시 임종호 씨는 순천중앙 초등학교 골키퍼를 지도해주곤 했었고, 그 과정에서 김영광의 골키퍼로서의 재능을 발견했던 것이다.

“임종호 선생님은 정식 GK코치는 아니셨고, 1주일에 3번 정도 오셔서 지도해주셨어요. 제가 볼보이로서 공을 줍고 있는데, 저를 보시더니 스트레칭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이것저것 조금씩 시켜보시더니 골키퍼로서 괜찮아 보이니까 한번 해보라고 하셨죠.”

“처음에는 골키퍼로 밀린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하다보니까 골키퍼가 저한테 맞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부모님께 골키퍼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은 축구를 그만두라고 하셨어요. 부모님 허락받으려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죠.(웃음) 골키퍼가 정말 나한테 맞는 것 같다고 애원하면서요.”



간신히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김영광은 본격적으로 골키퍼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초등학교 상비군에 뽑히는 기쁨을 맛봤다.

이후 순천 매산중에 진학한 이후에도 유소년대표로 활약하며 골키퍼 유망주로 손꼽히기 시작했다.

“축구 시작하면서 나한테 재능이 없나하는 생각도 했었고, 골키퍼를 시작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는데, 대표에 뽑히니까 그런 기분들이 한꺼번에 다 날라갔죠. 골키퍼하기를 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에요.”

평생 기억에 남을 98 U-16 아시아선수권 예선 및 본선

본격적으로 축구 엘리트의 코스를 밟기 시작한 김영광은 매산중 3학년 시절인 1998년, U-16 아시아선수권 예선 및 본선에 참가하며 국제경험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이 대회는 김영광으로서는 자신을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해줬으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도 여럿 만들어준 대회였다.

본선대회에 앞서 열린 예선에서 중국, 대만과 함께 7조에 소속된 한국 U-16 대표팀은 중국 청두에서 힘든 경기를 펼쳐야 했다. 한국은 대만을 6-0으로 이긴 상태였고, 중국 역시 대만을 6-0으로 이기며 두 팀이 아시아선수권 본선티켓 1장을 놓고 다투는 상황이었다.

한국과 중국의 운명의 한판은 1998년 5월 20일 열렸다. 청두에 모인 5만여 중국 홈팬의 열광적인 성원은 어린 한국 선수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경기장에 들어가는 순간 장난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5만여석이 꽉 차서 중국을 응원하는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형들도 마찬가지였구요. 경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줄곧 밀렸죠.(웃음) 슈팅수가 중국이 30여개고, 우리는 3개였던걸로 기억해요.(웃음)”

“당시 중국 가기 1주일 전에 손가락이 부러졌었어요. 그런데 대회 때문에 기브스를 하지 않고 받침대로 받쳐서 붕대를 감았죠. 연습할 때는 풀어서 테이핑하고 연습하고, 끝나면 다시 붕대 감고...많이 불편했죠. 공을 막으면 뼈가 손가락을 돌아다니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김영광은 중국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냈고, 경기는 0-0으로 끝났다. 두 팀 모두 1승 1무에 득실까지 똑같은 상황이라 아시아선수권 본선 진출팀을 가려내기 위해서 제비뽑기를 해야하는 상황. 여기서 중국은 제비뽑기가 아닌 승부차기로 결정할 것을 제의했고, 한국 역시 동의하면서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당시 중국 골키퍼가 193cm였고, 저는 178cm였어요. 아마 중국 측에서는 승부차기를 하면 자기들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었나봐요. 그래서 승부차기가 시작됐는데 우리 1번 키커가 넣지 못했어요. 불안했죠.(웃음) 그런데 중국 3번 키커가 제가 무서웠는지 밖으로 차버리더라구요.(웃음) 그리고 5번 키커의 슛을 제가 막아내서 결국 우리가 이겼죠.”

“좋아서 난리가 났죠.(웃음) 경기내용에서는 중국이 좋았는데 우리가 이겼으니까요. 게임 끝나자마자 비도 내리고, 중국 관중들은 박수를 쳐주더라구요. 아무튼 제 개인적으로도 손가락이 다친 상황에서의 힘든 경기라 평생 잊혀지지 않은 경기에요.”

어렵게 조 예선을 통과한 뒤 카타르 도하에서 U-16 아시아선수권 본선이 열렸고, 김영광은 최성국, 주광윤, 김두현, 김동진, 김영삼, 한정화 등과 함께 카타르로 향했다.

한국은 일본, 오만, 방글라데시, 바레인과 함께 B조에 속했고, 일본과 오만, 방글라데시를 차례로 연파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조 1위를 결정짓는 최종전에서 바레인에게 3-4로 패하며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영광은 오만과의 2차전에서 실신을 하는 등 힘든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분위기는 좋았어요. 그런데 오만과의 2차전에서 경기 중에 실신을 했죠. 볼을 잡으러 점프한 상황에서 오만 공격수가 허리를 숙여버렸고, 거기에 걸리면서 목부터 그라운드에 떨어졌어요. 바로 정신을 잃었죠.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그 경기 이후 조금은 위축된 부분도 있었기에 바레인과의 최종전에서 실점을 많이 허용했던 것 같아요. 그 경기에서 3-3으로 비기기만 했어도 세계대회 진출이 훨씬 수월했었을텐데 아쉬워요.”

바레인에 패하며 조 2위로 4강에 진출한 한국은 홈팀 카타르에게 1-2로 패하며 3/4위전으로 밀려났고, 거기에서 바레인에게 또다시 패하며 세계대회 진출권을 놓치고 말았다. 만약 바레인과의 예선 경기에서 3-3으로 비겼다면 조 1위로 4강에 진출, 태국과 맞붙는 만큼 세계대회에 진출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았었던 만큼 김영광으로서도 아쉬워할 만한 대목.

광양제철고에 진학하다.

순천 매산중을 졸업한 김영광은 주저없이 광양제철고로 진학을 결정했다. 광양제철과 프로팀 전남에서 후원하고 있는 학교인지라 여러 가지 운동여건이 좋다는 장점과 함께 프로팀 연고학교이기 때문에 프로진출이 수월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던 것이다. 또한 U-16 대표팀 시절 감독이었던 기영옥 감독이 있다는 점도 광양제철고로 진학한 이유 중 하나였다.



김영광은 동기생인 임유환(현 교토 퍼플상가), 장경진(현 전남 드래곤즈) 등과 함께 광양제철고를 전국최강팀 중 하나로 이끌었다.

특히 골키퍼 김영광과 중앙수비수 임유환, 장경진이 버티는 수비는 단연 고교 최강으로 평가받았다.

“뭐 제 앞에 청소년대표 수비수들이 버티고 있으니까 안전했어요.(웃음) 일단 저희 학교의 패턴이 1골 넣고 이기는 거였죠. 시합에 나가서 우리가 1골만 넣으면 이긴다는 생각이었고, 비겨도 승부차기에서 이긴다라는 생각이었죠.(웃음) 예전에 전국체전에 나가서는 결승까지 총 4게임을 치렀는데, 2번째 게임을 제외하곤 전부 승부차기로 이겼어요. 수비가 원체 탄탄하니까요.(웃음)”

광양제철고하면 ‘호랑이 감독’으로 유명한 기영옥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모두들 기영옥 감독을 무서워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영옥 감독을 존경하고 졸업한 뒤에도 따르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기영옥 감독님이 무섭고 엄하셔도 잔정이 많으신 분이세요. 무섭게 혼내시더라도 우리를 위해 그러신다는 것을 모두들 알기 때문에 졸업한 뒤에도 자주 찾아 뵙고 그러는 거죠.”

광양제철고 출신들은 모두 그러하듯이 김영광 역시 기영옥 감독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동계훈련 중에 연습게임을 했어요. 그 경기에서 전반 끝날 무렵 크로스가 올라왔는데 제가 위치선정을 잘못하는 바람에 어이없게 실점을 했거든요. 그 당시 제가 머리를 기르고 있었고, 감독님께서도 그 부분에 대해 많이 봐주시고 계신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 실수를 한 다음에 감독님이 나오라고 하시더니 지금 당장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삭발하고 오라고 하셨어요.(웃음) 이발소에 흙 묻은 유니폼을 입고 가서 삭발하고 왔죠.(웃음) 더 웃긴 것은 갔다와서 후반전에 또 경기에 뛰었어요.(웃음) 삭발한 상태로 말이죠. 상대 선수들도 웃겼던지 황당하게 쳐다보더라구요.(웃음)”

머리가 깨지는 한이 있어도 볼은 막는다.

앞에서도 언급됐듯이 김영광의 근성, 승부욕은 남다르다. 고교 동기이자 U-20 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동료로서 김영광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왔던 임유환은 “영광이는 정말 지독해요. 예를 들어 이런 일도 있었어요. 상대 프리킥 찬스에서 공이 골대 쪽으로 휘어 들어갔는데, 머리를 골대에 부딪치면서도 끝까지 볼을 막아내더라구요. 머리가 깨지든 어쨌든 일단 볼은 막고 보겠다는 정신을 가진 녀석이에요”라며 혀를 내두른 바 있다.

김영광 본인도 “저번에도 연습하다가 골대에 머리를 받아서 찢어졌어요. 얼굴만 5군데 정도 찢어졌었죠.(웃음) 위험한 순간에는 딴 생각이 안들어요. 일단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설사 부상을 당해 교체되더라도 막을 것은 막고 교체되야죠”라며 강한 승부근성을 드러냈다. 이런 점이야말로 김영광이 골키퍼로서 갖고 있는 가장 큰 재능일 것이다.



2002년 광양제철고를 졸업한 김영광은 고려대행이 유력한 듯 보였으나 막판 전남행을 선언하며 프로무대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2002년 10월에 열리는 U-20 아시아선수권에 대비해 박성화 감독 체제로 본격 출범한 U-20 대표팀(당시 U-19 대표팀)에 뽑혔다.

U-20 대표팀에는 김영광 이외에도 고교 시절부터의 라이벌 염동균이 주전 골키퍼를 노리고 있었다.
김영광과 염동균은 공교롭게도 함께 전남으로 입단, 소속팀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사이.

어차피 팀의 주전 골키퍼는 1명이고, 재능면에서 남다른 이 2명의 선수는 서로 경쟁하면서 주전 자리를 꿰차야 하는 비정한 현실 속에 놓여있다.

“처음에 동균이와 같이 전남 입단이 결정되면서 둘 중에 한 명은 떨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팀훈련 이외에도 저녁훈련, 새벽훈련을 항상 꾸준히 하며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노력했죠.”

두 선수 모두 전남에 소속되어 있고, 전남이 골키퍼 자원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라 초창기 U-20 대표팀 훈련에 두 선수가 모두 합류한 이후에는 두 선수 중 한 명만이 U-20 대표팀에서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소속팀 전남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이후 박성화 U-20 대표팀 감독은 “실력은 두 선수 모두 훌륭하다. 그러나 일단 큰 대회 경험이 많은 김영광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가겠다”고 밝히며 김영광을 중용했다.

김영광은 2002년 3월 13일에 열렸던 U-20 대표팀의 공식 첫 경기 일본전 출전을 시작으로 U-20 아시아선수권 1차 예선, 중국과의 평가전, 유럽전지훈련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U-20 대표팀의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아시아선수권을 2개월여 앞둔 2002년 8월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과 9월 아시안게임대표팀 및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김영광은 대표팀에 차출되지 않았고, 그의 빈 자리에는 염동균이 대신 기용됐다.

박성화 감독은 두 선수를 모두 차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동안 김영광을 충분히 지켜봤으니 이제는 염동균도 관찰해보려는 의도라고 밝혔지만, 김영광으로서는 큰 위기감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아시아선수권에 나가지 못하는가라는 위기감이 있었어요. 여기서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시 기회가 올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운동했고, 결국 다시 기회를 얻었죠. 그 때 김풍주 코치님과도 한번 열심히 해보자라고 각오를 새로 다졌구요. 만약 대표에서 탈락한 시점에서 그냥 포기했더라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을 거에요.”

“그 기간에 운동 열심히 하고, 몸을 완벽히 만들어놨기 때문에 다시 뽑힐 수 있었고, 게임에서도 자신감있게 할 수 있었던 거죠. 예전에는 골을 허용한 뒤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이 약점으로 꼽히곤 했었는데, 그것도 그 때 이후로 많이 고쳤어요. 지금은 실점을 해도 바로 잊어버리고, 다음 공을 잘 막자라고 내 자신을 컨트롤하죠.”

결국 2002년 10월 카타르에서 열린 U-20 아시아선수권에 참가하게 된 김영광은 결승전까지 총 6게임에서 1실점만을 허용하며 한국의 우승에 큰 공헌을 세웠고, 관계자들로부터 대회 최고의 골키퍼로 인정받았다. AFC에서 선정한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

박성화 감독 또한 김영광의 활약을 크게 칭찬하며 “베스트 11에 한국 선수가 3명이나 포함된 상황이라 그랬던 것 같다. 영광이나 (이)종민이 정도면 충분히 뽑힐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팀이 우승했으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별로 없어요. 선정됐으면 좋았을텐데라는 기분 정도는 있었지만, 특별히 실망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죠. 우승한 것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U-20대표팀 훈련 중에. 성경일,정성룡,김영광, 정조국(좌로부터 시계방향)

그 이후 U-20 대표팀은 UAE 4개국대회와 잉글랜드 전지훈련을 거치며 2003년 3월에 열릴 세계선수권을 준비했고, 김영광 역시 주전 골키퍼로서 더욱더 듬직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세계선수권이 임박한 시점에서 이라크 사태로 인해 대회가 11월말로 연기되면서 U-20 대표팀도 각자의 소속팀에서 경험을 쌓으며 개개인의 기량 향상에 힘쓰고 있는 상황.

아마도 11월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지금까지의 U-20 대표팀과는 다소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몇 개월에 불과하지만 프로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새롭게 부상하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침체에 빠지는 선수들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많은 U-20 대표팀 선수들이 프로에 뛰어들어 경험을 쌓고 있고, 대회가 연기됨에 따라 이 선수들이 보다 많은 경험과 실력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으로선 다행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연기된 것이 더 잘됐다고 봐요. 그 때는 애들 경험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에 출전해도 예선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랑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지금은 프로무대에서도 많이 뛰고 있고, 애들이 보다 성숙해 있으니까 좀 더 여유있게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U-20 대표팀이 소집되지 않아서 애들 본지도 오래됐어요. 보고 싶네요. 다들 바쁘고, 프로에도 가 있고, 그러다보니 연락도 자주 못하죠. 빨리 모여서 훈련하고 싶어요. 같은 또래들이라 모이면 재미있거든요.(웃음) 소속팀에서는 다들 선배들이라 쉽게 어울리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웃음)”

쉽지 않은 프로무대

2002년 K리그에 뛰어든 김영광은 전남의 베테랑 골키퍼 박종문에 가려 한 게임도 뛰지 못한 채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만 했다.

그러나 김영광은 이것에 실망하지 않고, 호시탐탐 출장기회를 엿봤다. 프로에서 잔뼈가 굵은 박종문 골키퍼의 경험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팀훈련 이외에도 개인훈련을 충실히 하며 기량을 연마했다. 그리고 프로 2년째인 올해부터 서서히 출장기회를 잡아나가고 있는 상황.

“박종문 선배님은 프로에서 오래 계셨고, 경험도 많으신 분이에요.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웠죠.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겠다 등등..골키퍼에 관한 조언도 많이 해주세요.”

“입단 첫 해에는 기회가 없었지만, 꾸준히 개인훈련 하면서 기다리니까 두 번째 해인 올해부터 기회가 오더라구요. 프로 데뷔 첫 게임이 지난 5월 24일 부천전이었는데, 경기 당일날 아침에 알았어요. 그 전날 이야기해줬으면 몸풀 때도 좀 더 신경써서 풀고, 저녁에 이미지 트레이닝도 할텐데 조금 아쉬웠죠. 저는 경기 전날 항상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거든요.”

“어쨌든 이런 준비 없이 갑자기 게임을 뛰려니까 조금 당황됐어요. 프로경기가 대표팀 경기하고는 또 다르더라구요. 엄청 긴장이 되는데, 들어가서 아무 것도 안보였어요.(웃음) 경기는 1-1로 비겼는데, 첫 게임치고는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감격적인 데뷔게임 이후 1달여 동안 또다시 벤치 신세를 지게 된 김영광에게 다시 기회가 온 것은 6월 22일 성남과의 원정경기.

주전 골키퍼 박종문이 어깨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김영광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김영광은 여러차례 멋진 선방을 보여주며 코칭스태프를 만족시켰다.

“성남전이 있기 3일전쯤에 종문 선배님이 어깨가 좋지 않으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성남전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했고,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연달아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어요. 경기에 계속 출전하면서 자신감도 많이 붙었어요. 처음에는 경기에 나서면 많이 떨리기도 했고 그랬는데 말이죠.(웃음)”


부천과의 프로데뷔무대/출처:김영광 다음카페


김영광은 성남전을 포함해 7월 12일 대구전까지 6게임 연속 출장했고, 이후 8월 3일 전북전 출장까지 올 시즌에만 8게임에 출장하며 본격적으로 박종문과 주전경쟁을 펼치게 됐음을 과시했다.

8게임에서 총 10실점으로 경기당 1.25점의 좋은 실점율.

“프로에 와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몸관리에요. 프로는 그야말로 최고가 모이는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하고, 자기 몸관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뭔가 찝찝해지더라구요. 누가 혼내는 것도 아닌데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이상하고, 불안하고 그래요.(웃음) 조금씩이라도 꼭 개인훈련을 하죠.”

“경기에 출전할 때에는 여러 준비를 통해 최선의 방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죠. 예전에 김풍주 코치님께서 경기에 앞서 선수 파악이 중요하시다면서 여러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었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예를 들어 각 선수별로 페널티킥이나 프리킥 찰 때 선호하는 방향을 체크하죠. 그리고 오른발을 주로 쓰느냐, 왼발을 주로 쓰느냐도 체크하고, 헤딩이 좋은 선수, 중거리슛이 좋은 선수, 문전에서 바로 슈팅타이밍을 가져가는 선수, 한번 접어서 슈팅하는 선수 등을 파악하죠. 또한 크로스를 올릴 때 낮게 올리는 선수, 높게 올리는 선수 등도 생각해놓구요.”

그렇다면 김영광이 겪은 K리그의 스트라이커들은 어떤 느낌일까? 다른 골키퍼들과 마찬가지로 김영광 역시 까다로운 공격수들로 외국인 스트라이커들을 꼽았다.

“골키퍼로서 가장 까다로운 공격수는 예상하지 못한 위치, 상황, 타이밍에서 슛을 날리는 선수들이에요. 드리블로 치고 들어오다가 달려드는 스텝 그대로 툭 슛을 날리거나 슛을 감아서 차거나 찍어서 차는 경우에는 막기가 힘들어요. 오히려 힘 좋은 선수들이 날리는 대포알 슛 같은 경우가 더 막기 쉽죠.”

“그런 면에서 샤샤나 뚜따, 마그노 같은 선수들이 까다롭죠. 뚜따 같은 경우 2골을 허용했는데, 슈팅 타이밍이 무지 빨라요. 그래서 타이밍을 잡기가 무척 힘들죠. 마그노 같은 경우에도 어떤 곳에서도, 심지어 각이 없는 위치에서도 슛을 날려요. 순간동작도 엄청 빠르고, 골키퍼를 읽고 플레이한다는 느낌이에요.”

U-20 대표팀과 전남에 이어 올림픽대표팀에서도 입지를 굳히다.

프로무대에서의 좋은 활약을 발판으로 김영광은 올림픽대표팀에도 합류했다. 출범 초기 박동석(안양)과 김지혁(부산)의 경쟁구도였던 올림픽대표팀에 김영광이란 새로운 변수가 나타난 셈.

김영광은 지난 4월 코스타리카전에서 벤치를 지켰으나 이후 프로무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지난 7월 14일 아인트호벤과의 평가전에 주전으로 투입됐다. 그리고 7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일본 올림픽대표팀과의 경기에서도 주전으로 기용되어 침착하게 골문을 지키며 올림픽대표팀에서도 확실하게 입지를 굳혔다.

“최근 2경기에서 뛰었지만 아직까지 주전자리가 확실한 것은 아니에요. 계속 긴장하고 열심히 해야죠. 아인트호벤전 같은 경우 만약 K리그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긴장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프로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많이 얻었기 때문에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일본과의 경기는 지금까지 제 경험 중에서 가장 큰 경기였어요. 처음 경기 시작하기 전에는 긴장된 것도 사실인데, 막상 경기장에 들어가니 떨리지는 않았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사실 원정경기인지라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좋은 경기를 했다고 생각해요.”

“비가 오는 가운데 경기를 했기 때문에 볼이 미끄러워 까다롭긴 했어요. 태욱이형이 선제골을 넣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쉽게 비겼죠. 실점 순간을 돌이켜보면 측면에서 중앙으로 크로스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중간에서 커트하기 위해 나가는 순간 발이 하나 앞으로 나오는 것을 봤는데, 거기에 볼이 맞고 굴절되며 들어갔죠. 병국이형이 먼저 커트하려고 했던 것인데 운이 나빴던 거죠.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운재와 올리버 칸을 뛰어넘고 싶다.

김영광이 목표로 하고 있는 골키퍼는 이운재(수원)와 올리버 칸(독일, 바이에른 뮌헨)이다. 지난 해 U-20 대표팀 훈련과 FA컵이 남해에서 동시에 열린 적이 있었다. 대표팀 오전훈련을 끝마치고 김영광은 점심 휴식시간을 이용해 FA컵에 출전한 수원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김영광이 위치한 곳은 경기가 잘 보이는 관중석 중앙이 아니라 수원 골문 바로 뒤였다. 김영광은 경기 내내 수원의 골문 뒤에서 이운재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이운재 선배님의 플레이를 유심히 관찰하며 제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단 김풍주 코치님이나 조병득 코치님(전남 GK코치)이 가르쳐 주신 것에 이운재 선배님이 하시는 것을 접목해 따라하려고 노력하죠.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등도 유심히 살피고..”

“이운재 선배님 외에도 올리버 칸을 존경해요. 그리고 이케르 카시야스(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도 좋아하구요. 카시야스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넘치게 잘하더라구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칸이 최고라고 생각하죠. 플레이 자체도 훌륭하지만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칸의 매력인 것 같아요.”

40세까지 현역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

2003년은 김영광에게 있어 중요한 한해가 될 것이다. K리그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올림픽대표팀에서도 주전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무엇보다 11월에 열리는 U-20 세계선수권은 김영광이 앞으로 선수생활을 하는데 있어 크나큰 경험이 될 것이다.

“일단 올해 목표는 전남이 K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과 주전자리를 확보하는 거에요. 올림픽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뛰고 싶고, U-20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구요.”

“궁극적으로는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가 되고 싶고, 40세가 될 때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신의손(안양)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 분이 44세이신데 그 나이에는 보통 배나오고, 완전 아저씨가 되어야 하잖아요.(웃음) 그런데 여전히 현역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해요.”

“저도 40세까지는 현역에서 뛰고 싶고, 그 이후에는 지도자 공부를 해서 프로팀 감독이 되고 싶어요. 골키퍼 출신 프로팀 감독이 거의 없는데, 꼭 이뤄보고 싶어요.”


지킬께♥
211.186.89.***
8게임에서 총 10실점으로 경기당 1.25점의 좋은 실점율 -> 일반K리그 타팀이면 좋은 실점율이나 전남에서는 무지하게 많은 실점이오~ -ㅂ- 영광선수 점점 잘 하라리라 믿어 의심치 않소~~~ 그나저나 전남에 염동균선수는 어찌되는걸까?? ㅠ.ㅠ ==> 자게에서 역시 리플도 이사~ ㅠ.ㅠ 2003-08-27
20: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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