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남 감독으로 복귀한 '중국의 히딩크' 이장수 감독

2003-12-28 16:01:16, Hit : 3416, IP : 218.238.190.***

작성자 : 오마이뉴스
  
"팬들을 경기장으로 모으는 경기 펼칠 것"



▲ 19일 압구정 모 카페에서 만난 전남 이장수 감독  



"절 그들의 친구로 생각해주는 '정'을 얻었어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중국 축구팬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자 평생의 명예죠."

한국에 히딩크가 있다면 중국엔 이장수(47) 감독이 있다. 무려 한 팀이 한 시즌에 감독을 세 명이나 바꾸는 살벌한 중국 축구계에서 6년간 최장수 감독을 연임하며 팬클럽 1천만 명을 거느린 중국 충칭의 별 리장주(중국명).

중국 축구계는 외국 감독 영입에 적극적임과 동시에 이 감독 전까지 최장수 선임 기간이 1년 6개월을 넘기지 못할 만큼 '감독의 무덤'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축구 감독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최은택(옌볜)·김정남(산둥)·박종환(우한)·차범근(선전) 같은 쟁쟁한 한국인 지도자 5인이 중국을 다녀갔다.

그러나 성남 박종환(현 대구FC감독) 감독 밑에서 7년간 코치로 있다 감독으로 승격된 지 10개월만에 해임된 것이 국내 프로리그 지도자 경력의 전부인 무명의 이 감독이 중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지난 87년 호남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 감독은 국내 리그 성남 코치로 박종환 감독(현 대구FC 감독)과 함께 K리그 3연패(93~95년)를 달성했다. 96년 이 감독은 성남 감독을 끝으로 국내 리그를 접고 브라질 유학을 떠났다. 그 후 이 감독은 98년 중국으로 건너가 충칭과 칭다오를 FA컵 정상으로 이끌며 두 번이나 '명예시민상'과 '최우수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이젠 국내 리그 전남 드래곤즈의 새 사령탑으로 금의환향한 그를 지난 19일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 하루 평균 2-3건의 인터뷰를 응하느라 분주한 그였지만 중국 얘기를 풀어놓는 그의 얼굴엔 흐뭇함이 떠나질 않았다.


  
ⓒ2003 김진석

"처음에 중국에 간다고 할 때는 모두가 말렸어요. 젊어서 망가지면 다시는 못 일어난다며 왜 하필 '감독의 무덤'인 중국이냐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대했어요. 기다리면 국내에서 또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며 모두가 만류했죠. 하지만 전 젊기에 더 도전을 하고 싶었고 어디에 있든 축구는 똑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솔직히 말하면 당장 저 말고는 가족을 먹여 살릴 사람도 없었죠."(웃음)

98년 6월 이 감독은 어린이 대회든 학생 대회든 축구 대회에서 단 한번도 우승컵을 받은 적 없는 3000만 인구의 대도시 충칭에 최초로 FA우승컵을 안겼다. 때마침 최하위 팀이던 충칭은 1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떨어지려는 수렁을 벗어났으니 그야말로 영웅을 만난 것이었다.

"처음 2년 간은 못 알아들어서 말도 못했고, 중간 2년은 들렸지만 확실히 몰라 말을 못했고, 나머지 2년은 다 알아들어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선 지금도 말을 못해요. 처음엔 그저 생긴 게 비슷해 큰 차이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음식이나 기후, 문화 차이로 적잖이 힘들기도 했죠."

중국에서 그는 오로지 혼자였다. 가족을 한국에 남겨둔 채 아무 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맨 몸으로 그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양아버지 관계를 맺은 많은 중국의 아들, 딸들이 넘쳐난다. 이 감독은 적어도 중국에서만큼은 히딩크보다 더 인기가 많을 거라며 너스레를 떤다.

이 감독이 충칭을 상위권 팀으로 올려놓기 시작하자 중국 프로 축구계에서 보내는 그를 향한 구애가 끊이지 않았다. 모두 이 감독이 실력 있는 팀을 찾아 더 많은 돈과 좋은 조건으로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도 그는 충칭을 떠나지 않았다. 프로의 세계에서 '돈'을 좇을 거라는 많은 이들의 '상식'을 뒤엎고 이 감독은 그렇게 명예를 중시하는 '충칭의 별'이 됐다.

"정 때문이죠.(웃음) 아직도 충칭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가 생생해요. 경기장을 메웠던 팬들과 같이 울었던 고별 경기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절 그들의 친구로 생각해주는 '정'을 얻었어요. 돈으로도 환산되지 않는 중국 축구팬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자 평생의 명예죠."

충칭엔 이장수 감독의 이름을 딴 작은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이장수 초등학교'가 생기기까지의 속내엔 이 감독의 고난이 얽혀있다. 지난 2000년 중국의 스포츠지 <난팡티위>가 충칭의 이장수 감독이 검은 돈을 받았다고 보도를 했고 이에 이 감독은 <난팡티위>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재판은 2년 동안 진행되었고 틈틈이 그 과정이 중국 방송으로 전국에 생중계 됐다. 결국 15만 위안(약 2130만 원)의 배상금 지급 판결을 받은 이 감독은 그 중 10만 위안을 장학사업단체인 '시왕궁청' 에 희사하고 나머지 5만 위안은 충칭지역 유소년 축구 발전 기금으로 내놓았다.


ⓒ2003 김진석

'시왕궁청'은 희사받은 기금으로 이장수 이름을 붙인 초등학교를 세워 운영하기로 했고 이 감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명예를 얻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반대로 <난팡티위>가 이 감독의 법정 진술(검은 돈을 받은 것은 내가 아니라 거짓된 보도로 신문 판매량을 늘려 수입을 올린 신문사측이다)을 문제 삼아 이 감독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솔직히 재판을 시작하고 너무 힘들어서 후회도 많이 했어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파출소 근처에도 한번 안 가봤는데…. 자식의 목숨을 담보로 걸만큼 100% 결백했기에 재판을 했죠. 게다가 저 개인을 떠나 한국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중국에 있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회상한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도 승소를 확신했다. 이 감독은 "내 자식의 목숨을 담보로 걸 정도인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하며 단호히 말했다. 항상 그의 이름 앞에 먼저 붙는 '한국'이라는 조국 때문에 말 한마디 행동하나 쉬이 할 수 없었다는 이 감독. 그가 느낀 중국은 무서울 만큼 거대했다.

"중국에서 40-50대 근로자의 '일년' 평균 임금이 150만원정도 해요. 근데 축구 선수 중에 일년 연봉이 3억 이상인 선수들이 많아요. 일반 근로자가 20년 동안 안 쓰고 모은 돈이 축구 선수 일 년 연봉과 같은 셈이죠. 중국의 그런 잠재력이 무서워요. 처음엔 저도 몰랐는데 정말 거대한 대국이에요. 느긋하고 여유롭지만 작은 것들엔 아예 신경조차 안 쓰죠. 앞으로 5-6년 내 중국 축구가 과도기를 거치고 나면 한국과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을거라 장담해요."

"왜 그렇게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중국인은 물론 한국인도 이 감독에게 숱하게 물어본 질문이다. 그럴때마다 그는 '안 짤리고 오랫동안 해서', '생김새가 비슷해서'라는 등의 답변을 했다고 한다. 기자 또한 이 뻔한 질문을 결국 던지고 말았지만 이 감독은 그저 "운이 좋았던 것 같다"라는 한마디를 덧붙이며 소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리그 우승을 못해 30% 아쉬움이 남아요. 중국을 떠나오면서 팬들에게 약속했어요. 언젠가 채우지 못한 30%를 다시 채우러 오겠다고. 서로 아쉬울 때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았죠. 그래야 제가 다시 돌아 갈 수 있잖아요.(웃음). 6년간 저와 떨어져 있던 한국의 가족들에게도 너무 미안했구요. 저 혼자 잘해서 된 게 아니라 결국엔 열과 성을 다해 응원해준 팬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어요."

감독으로서 최고의 '황금기'를 중국에서 보냈다는 이 감독. 그는 중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자신을 아무것도 모르는 '촌놈'이라고 소개한다. 존경하는 선배(이회택 감독)의 권유로 계획보다 빨리 국내에 복귀한 그는 '부담'과 '설렘'이 교차된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중국 리그와 달리 한국은 2부 리그가 없어 관중들은 오로지 우승팀에만 관심을 가져요. 자연히 언론 또한 우승팀만 보도하게 되죠. 하지만 중국은 시즌 내내 16개 팀이 동시에 골고루 팬들의 관심을 얻어요. 우승 선두권 팀, 2부로 내려가는 팀, 1부로 올라오는 팀으로 관심이 분산돼 언론도 모든 팀을 보도할 수밖에 없죠.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한국 프로 리그는 관중의 흥미 유발 요소가 덜한 것 같아요."

그가 천만의 중국인을 사로잡은 축구를 한국에서도 선보이려 한다. 환영해주는 한국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감독으로서 어찌 성적에 대한 걱정을 안 하겠냐고 너스레를 떠는 이 감독. 팬들을 경기장으로 끌어 모으는 경기를 펼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 중국에서 얻은 '느긋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2003/12/26 오전 10:47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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